매일신문

[지방대학, 변해야 산다] <상> 신입생이 없어요

생존 구조조정엔 공감, 정원은 못줄이는 현실 '딜레마'

지난달 계명대 대명캠퍼스 서예과 서예실에 학생들은 떠나고 화선지와 벼루, 먹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과는 학교 측에서 2년 전 신입생 모집을 중지시키면서 서예과 학생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다른 과로 전과했으며, 지난 학기 기준으로 4학년 학생은 5명만 남았다.
지난달 계명대 대명캠퍼스 서예과 서예실에 학생들은 떠나고 화선지와 벼루, 먹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과는 학교 측에서 2년 전 신입생 모집을 중지시키면서 서예과 학생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다른 과로 전과했으며, 지난 학기 기준으로 4학년 학생은 5명만 남았다.

지방대학이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2018년 이후 신입생 수가 급감, 입학생을 채우지 못할 대학들이 속출할 전망이다. 블랙홀과 같은 수도권 대학에 맞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 없이는 살아남을 대학이 많지 않을 것이란 암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대학들은 2018년 이후를 대비해 살아남기 경쟁에 서서히 돌입하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처럼 순수 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는 벌써 신입생 선발이 녹록지 않으면서 하나 둘씩 통합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라지고, 합쳐지고…

계명대는 2014학년도 1학기부터 철학과와 윤리학과를 통합해 철학윤리학과로 이름을 바꾼다. 매년 한 학과에 각각 30명씩 뽑았던 신입생도 학과가 통합되면 입학정원이 40명으로 줄어든다. 이 같은 학과 구조조정은 각 과의 '생존력' 문제가 대두했기 때문. 지난해 철학과 졸업생은 8명. 매년 신입생 30명을 뽑지만 졸업 시즌이 되면 남는 학생이 입학 때의 3분의 1도 안 된다. 신입생을 채우기 쉽지 않은데다 취업률까지 떨어지면서 두 과의 통합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대학 측의 설명이다. 계명대 이필환 교무처장은 "올해까지 졸업한 학생들은 해당 학과 졸업장을 주며 내년 신입생부터 통합과에 입학하게 된다. 원래 윤리학과가 철학과 안에 있다가 분리된 과거 역사도 있고 두 과 다 생존력이 낮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오랜 협의 끝에 통합됐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서예과 신입생 모집을 중지했다. 학교 측은 마지막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전공수업을 없애지 않기로 약속하는 한편 전과를 원하는 학생은 원하는 과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대부분 학생들은 시각디자인과나 중국학과 등으로 떠났다. 서예과에 남은 학생은 15명, 입학할 때 30명이었던 4학년 학생은 이제 5명만 남았다.

대구가톨릭대는 10년 전부터 인문대학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현재 인문대학은 사라지고 '문과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어문학부와 영어영문학과 일어일문학과와 러시아어과, 무용학과 등 다섯 학과만 남았다. 대구가톨릭대 사학과 신입생 모집이 중지된 것은 2003년. 인문대를 지탱했던 이 학과가 역사교육학과에 통합되고 철학과와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이탈리아어학과 등이 차례로 사라졌다. 자연과학대학서도 통계학과와 물리학과의 신입생 모집이 중지됐다. 대가대는 지난해 겨울 산업교육 컨설팅 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에 대학 학령인구(대학진학 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2030년을 대비해 학교 규모 축소 등 내용을 담은 컨설팅을 의뢰했다.

성한기 교무처장은 "우리는 지역에서 가정 먼저 학과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학"이라며 "대학이 인문학을 키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지금처럼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는 현실에서 중위권 대학은 실용학문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대는 올해부터 야간대학을 사실상 없앴다. 2012년도 145명의 신입생을 받았지만 올해는 산업복지학과 35명만 받았다. 애초 30, 40대 직장인을 상대로 야간대학을 개설했지만 최근 이들이 평생교육원이나 사이버 대학으로 쏠리면서 입학생 수가 줄어 더 이상 야간강좌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야간대학 입학생들은 주간에 수업을 받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직장인보다 고교 졸업 후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별도의 야간대학을 운영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했다.

인문대뿐 아니라 예술대도 위험하다. 최근 청주대는 회화학과의 내년 신입생 모집 중지 결정을 내렸다. 올해 5월 자체 시행한 경쟁력 평가에서 회화학과가 3년간 최하위 점수로 밀려나자 학교 교무위원회에서 '폐과'를 결정했다. 해당 학교 회화학과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올해 5월 청주시 상당구 상당공원 네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예술을 취업률이라는 일률적인 지표로 평가해 학교를 폐지하기로 한 학교 당국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학교가 우리 입장을 수용할 때까지 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입학생 수 급감

대학들이 이처럼 학과 통폐합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만간 대학 입학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고등교육 충원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학령인구는 지난해 69만 명에서 2030년이 되면 41만 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재 120% 수준인 4년제 대학의 충원율이 2020년이 되면 80%로, 전문대학은 2020년 후반에 40% 내외로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 인원으로 살펴보면 입학생 부족 인원이 2018년 약 5천 명, 2020년 3만 명, 2022년 13만 명, 2030년은 18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전국 대학의 20~30%가 문을 닫아야 할 상황.

문제는 지방대학이다. 수도권 대학에 학생이 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4년제 대학들은 당장 2018년부터 충원율을 채우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학령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학생들이 충청도, 강원도 영서 지역까지는 입학을 하지만 대구경북으로 입학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권과 호남권 대학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박사는 "외국인 학생 유입과 20세 이상 성인들의 대학 정규과정 참여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입학 정원의 대폭 감축이 불가피하다. 수도권과 먼 호남과 대구경북권 대학에 집중 타격이 예상되며 최대 20~30%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대학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입학 정원을 쉽사리 줄이지 못하고 있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사립대(평균 69%)는 입학 정원을 조금만 줄여도 대학 재정에 곧장 타격이 오기 때문. 실제로 대구경북 주요 사립대의 최근 4년간 '신입생 정원내 모집 인원'을 분석한 결과, 4년 전에 비해 입학 정원을 5% 이상 줄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굼뜨는 구조조정

이처럼 눈앞에 위기가 닥쳤는데도 신입생 정원을 줄이지 못하는 현 상황을 대학 관계자들은 '치킨게임'이라고 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면서 결국 충돌해 자멸하게 되는 치킨게임처럼 대학들도 자신들은 신입생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서 타 대학이 줄이도록 신경전을 벌이는 현 상황을 두고 이처럼 표현한 것.

자발적으로 정원 감축에 나섰던 타지역 대학들이 재정 위기를 겪는 것을 목격했는데다, 타 대학이 먼저 정원 감축에 나서기만 기다리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지역에서 대규모 정원 감축에 나선 대학은 아직 없다. 하지만 가까운 울산대의 경우 2010년 자발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며 2011학년도 120명, 2012학년도에 64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이 학교는 2030년까지 현재 1만2천 명 정원을 단계적으로 37.5%를 감축해 정원 7천500명 대학을 만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윤상흠 영남대 기획부처장은 "1년에 신입생 50명을 줄이면 그해에는 50명이지만 1년 뒤에는 100명, 그 뒤 150명, 등록금 감소분이 해가 갈수록 누적돼 대학 재정에 타격을 준다. 타지역의 모 대학이 몇 년 전 200여 명 가까운 정원 감축에 나섰다가 상당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수 있는 정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대학의 한 관계자는 "신입생 정원을 줄이면 학령시장에 해당 대학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되는 탓에 쉽사리 정원을 줄이지 못하고 있고, 타 대학이 나서야 우리도 따라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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