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국민건강보험 36주년, 성과와 과제

7월 1일로 국민건강보험 시행 36주년을 맞았다. 1960, 70년대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경제사정이 점차 나아지는 시기였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한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특히 의료기관의 수도 적고 진료의 질이 낮았으며, 진료비 또한 비싸서 국민들이 현대적인 의료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때 정부는 무엇보다 건강만큼은 차별과 격차가 없도록 하기 위해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시범사업을 거쳐 1977년 7월 1일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최초로 시행했다. 이때도 건강보험증이 없는 사람들은 중병에 걸려 병원에라도 가려면 논 팔고 집 팔고 소까지 팔아야 했다. 심지어 친척의 건강보험증을 몰래 빌려 병원에 가기도 했다. 병원을 찾았다가 많은 치료비에 돌아서는 아쉬운 일도 허다했고,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병원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다.

이에 정부는 발 빠르게 적용인구를 확대해 나갔는데, 1979년 1월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편입했고, 1988년 7월에는 5인 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적용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제외된 농어촌 지역 주민과 자영업자들은 소득파악의 어려움 때문에 보험료 부과체계 설정이 곤란해 의료보험에 편입시키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88년 1월 농어촌 지역을 시행하고, 마침내 1989년 7월 1일 도시지역까지 포함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출범했다.

의료보험을 시작하고 불과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는데 시범사업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당시 대대적인 TV방송과 건강보험증을 만들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기억하면 아직도 그때의 뜨거운 감동과 보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후 2000년에 여러 개 조직을 하나로 통합해 오늘의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출범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건강보험의 시대를 열었다. 2008년에는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실시해 어르신들의 안정과 행복을 도모하고 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cradle to grave) 책임지는 사회보험의 큰 틀을 완성하게 됐다.

건강보험료율을 보면 5.89%로 일본 8.2%, 독일 14.86%, 프랑스 13.85% 등 OECD 국가에 비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며, 건강 수준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기대수명은 80.7세(OECD 평균 79.8세), 인구 1천 명당 영아 사망률은 3.2명(OECD 평균 4.6%)으로 국민건강 수준이 매우 우수하다. 국민의료 접근성을 평가할 수 있는 1인당 연간 외래진료횟수는 12.9회(OECD 평균 6.5회)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콘퍼런스 보드 캐나다 본부가 2006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의 건강수준과 진료결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5위로 평가됐고, 특히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와 공식 협력을 맺고 2004년부터 매년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을 개최해 30여 개 국가 대표단이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배우고 있다. 베트남을 시작으로 가나, 볼리비아 같은 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 제도를 수출하는 등 건강보험제도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아직 국민건강보험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잖다. 낮은 출산율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데 비해 인구 고령화로 노인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33%를 넘어섰다. 만성질환 등으로 전체 진료비도 연평균 12.3%씩 증가하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악화가 우려된다. 보험료 부과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단은 '실천적 건강복지 플랜'을 마련해 이를 토대로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을 마련하고, 치료 중심에서 예방, 건강검진과 건강증진 중심으로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아울러 진료비 심사청구 체계와 급여 결정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보다 효율적인 건강보험 제도가 되도록 하고 있다.

김춘운/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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