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10년 전 탈북자 돕다 中서 13개월 복역 석재현 대구미래대 교수

당시 北 송환됐던 주민들 별 탈 없단 소식 듣고 겨우 마음의 짐 덜어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대구 수성구 두산동 삼풍아파트에는 특별한 공간이 하나 있다. 외부인들은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곳이다. 원래는 전기발전실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중해 분위기의 흰색 벽과 파란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저 조그마한 단층 건물인 줄 알았더니 내부는 지상층과 꽤 널찍한 지하 1, 2층으로 나눠져 말끔히 꾸며져 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비밀기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중국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한국행을 돕다가 투옥되는 아픔을 딛고 사진작가'전시기획자로서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석재현 대구미래대학 교수(43'미디어디자인과)의 인생과도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기획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 사진전 개막 준비를 위해 24일 터키로 떠난 석 교수를 출국 전날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작전명 '리본'…13개월간의 중국 수감 생활

석 교수의 이름이 세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건 10년 전이다. 2003년 1월, 탈북자들을 보트에 태워 한국과 일본으로 탈출시키려 한 혐의로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체포되면서다. 2002년 연말 다국적 NGO들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대규모 탈북자 망명 프로젝트, '리본 작전'이었다.

"2001년부터 중국을 몇 차례 오가면서 우연히 탈북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알게 됐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한국 주재 사진기자로 일하던 터라 기사도 여러 번 썼죠. 한번 깊이 있게 취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에 인권단체 쪽에서 망명 과정 전체를 영상기록으로 남겨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위험한 일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NGO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일본 사진작가가 참석한 것을 보고는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탈북자 18명과 함께 출발한 석 교수는 기차와 배를 타고 2003년 1월 18일 옌타이까지 왔다. 하지만 최종 집결지로 가기 직전 일은 꼬여버렸다. 정보가 새어나가면서 이튿날 새벽 무장한 중국 공안들이 정박 중이던 한국행 배를 급습했고, 석 교수 일행은 모두 끌려갔다.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압송됐고 이들의 탈출을 돕던 가이드는 5년형, 석 교수는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촬영했던 동영상과 사진들은 압수됐다.

"중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싶어 처음에는 곧 풀려날 줄 알았습니다. 그해 7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제 문제가 거론돼 '보름만 기다리면 된다'는 우리 외교부의 언질을 받았고요. 하지만 결국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13개월을 복역한 뒤 강제추방 형식으로 귀국이 허용됐습니다. 제가 붙잡혔을 때 키 180㎝에 체중 78㎏이었는데 석방됐을 때는 62㎏까지 줄었더군요."

석 교수는 중국 죄수 10여 명과 함께 수용된 가로 4m 세로 7m의 비좁은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조화'포장박스 만드는 작업을 했다. 시력이 나쁜 그는 안경이 꼭 필요했지만 간수들은 렌즈도 위험 물건이라며 뺏어갔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이 그를 간신히 버티게 했다.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의 부인, 강혜원 씨였다. 서둘러 통화를 마친 그는 10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 씨는 현재 석 교수와 같은 대학 사회복지학과의 교수다.

"결혼 3년차 신혼 때 중국에서 체포됐습니다. 아기도 없었고요. 그래서 제가 면회온 집사람한테 '무거운 형을 선고받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몇 년씩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 같았거든요. 10여 차례 신청에도 면회는 딱 두 번 허용됐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오히려 저를 위로해줬습니다. '언제나 함께'라는 글자를 새긴 옷가지와 함께요."

석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각종 언론매체들의 인터뷰를 사절했다고 회고했다. 대단한 일을 하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회운동가로 비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귀국 후 처음 한 일도 조속한 석방을 기원하면서 자신의 작품들로 사진전을 열고 있던 선'후배들을 조용히 만난 것이었다.

"세상 일이 참 희한해요. 탈북자들을 도운 혐의로 저는 중국 감옥에 있었는데 같이 붙잡혔던 탈북자 한 분은 탈북에 성공해 저보다 빨리 한국에 오셨더군요. 또 중국 교도소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북한 관리도 망명했다며 연락을 해와 한국에서 재회하기도 했고요. 북한으로 송환됐던 분들이 다행히 별 탈 없다는 말을 전해듣고 저도 마음의 짐을 많이 덜게 됐습니다."

◆휴머니티(humanity)가 작품 화두

석 교수는 사진작가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 원래 많았다고 했다. 탈북자 돕기에 뛰어들었던 것도 같은 연장선상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접한 미국의 포토저널리스트, 윌리엄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1918~1978년)의 영향이 컸다. 2차 세계대전에서 '라이프'지 종군작가로 활약, 명성을 얻었던 스미스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휴머니즘을 추구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모님은 제가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저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고, 결국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줄곧 '휴머니티'를 근본 주제로 삼았던 걸 보면 가족들의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즐기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석 교수는 지금까지 모두 19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나이를 고려하면 상당히 다작(多作)인 셈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6차례 방문한 인도에서의 경험을 주제로 열었던 지난해 'Breath-India'처럼 대부분의 전시회는 자연과 사람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들로 구성됐다. 2010년, 2011년에는 태국과 일본에서 국제다큐멘터리 사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의 사진전시회 'On Korea-실크로드의 저편'을 기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와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강운구'육명심'구본창'김중만'박종우'오형근'이갑철'서헌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8명이 이번 전시회에 흔쾌히 참여한 것도 이심전심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 18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특히 천년고도 경주의 정신과 문화, 유적 등을 잘 담고 있지요.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인물 사진과 21세기 유일한 분단국가를 상징하는 비무장지대를 촬영한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다음 달 31일부터 9월 22일까지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 탁심광장에 있는 '탁심공화국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산업화와 가치관의 상실' '문화유산의 재발견과 새로운 가치 인식' '한국의 재발견' '한류 세대'라는 4개의 큰 스토리로 구성된다. 한글'터키어'영어로 된 작품 도록도 마련된다.

"이 작품들이 한국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진짜 한국의 이미지란 점에서죠. 사실 그동안 우리에 대한 이미지는 왜곡된 제국주의적 시각과 한국을 잠깐 다녀간 여행자들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 대부분이었지 않습니까? 그걸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 보자는 뜻이지요."

그가 기획한 전시회에 정작 그의 작품이 빠진 데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명료했다. "엑스포 조직위원회에서도 제 작품을 전시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기획자로서 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8명의 작가가 엄선한 작품이 어떻게 관람객에게 전달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석재현 교수는

석 교수는 대구에서 태어나 달성초교'대건중'영진고를 거쳐 경일대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하이오대 대학원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북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부터 지역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으며 대구미래대학에는 2012년 부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언론사의 사진기자로 일한 경험을 살려 다큐멘터리 월간지 'GEO'와 미국의 유력신문 '뉴욕 타임스'에서 프리랜서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전시기획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6, 2008년 대구사진비엔날레의 기획과 전시행정을 맡았으며 2011, 2013년에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에서 한국사진가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그 밖에 강원도청의 '여민동락 낙동리', 대구컨벤션뷰로의 '대구사진아카이브', 안양시의 '2010 만안의 이미지' 등 여러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는 "이스탄불 엑스포를 무사히 마치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개인 작업에 전념할 계획"이라며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와 같은 서남아시아 또는 남미를 둘러보면서 그들의 정신세계와 삶의 아름다움을 담아올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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