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사람 인(人)

교수 연구동 입구에는 울창하게 잎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벚나무, 측백나무, 라일락, 사철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나무들이다. 그 중 사철나무가 눈길을 끈다. 땅에서 나올 때는 분명히 두 나무였는데 천천히 서로 감아 오르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가지를 뻗고 나뭇잎을 피우고 있다. 마치 사람 인(人)자처럼.

연리목(連理木)이라는 말이 있다. 맞붙어서 결이 통하게 된 나무를 일컫는다. 화목한 부부, 마음이 통하는 남녀 사이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여기의 사철나무는 다르다. 맞붙은 후 한 몸이 되지 못하고 다시 떨어져 각각 자신의 몸통을 가진다.

한 환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25년 전 그의 나이 서른두 살 때 뇌동정맥기형을 수술했다. 뇌출혈을 일으켜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고 우리 병원에 왔다. 언어장애와 오른편 마비가 있었고 가끔씩 경련도 했다. 재수술을 해서 남은 기형을 완전히 제거했다. 퇴원 후 한 번씩 절뚝거리며 항경련제를 타러 왔다. 말을 더듬고 오른손 사용이 불편해서 시무룩했다. 몇 년을 그렇게 병원에 다녔다. 오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가 사는 지역의 병원에서 약을 타 먹도록 소견서를 써 주었다.

20여 년이 지난 몇 년 전 그가 다시 왔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전동 휠체어를 탄 아주머니와 함께 왔다. 그들은 부부처럼 보였다. 그의 모습은 한결 깨끗해졌고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같이 온 아주머니는 무척 똑똑하게 그의 병에 대하여 자세하게 물어서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뇌 CT도 다시 찍어 남아있는 기형이 없음을 확인시켰다. 그렇게 몇 년을 같이 병원에 다녔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았다. 서로가 서로의 병에 대하여 걱정해주고 그의 언어가 서툴러 표현하기가 힘들면 그녀가 거들었고, 그녀의 전동차가 진찰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 머뭇거리면 그가 도왔다.

온전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면 연리목은 되어도 사철나무와 같은 한 몸은 되지 못한다. 서로 보강할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나면 한 몸을 만들 수가 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완전한 인간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완전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가 장애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타인을 온몸으로 껴안아 한 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사람을 표시하는 글자가 '人'자임에도. 내 환자 부부는 사철나무처럼 완전한 한 몸을 이뤄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한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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