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군위 화본역에 다녀왔었다. 시골 간이역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마을 곳곳을 꾸미고 있는 삼국유사를 배경으로 한 벽화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폐교가 된 산성중학교를 이용해서 만들어 놓은 추억의 거리는 어른들에게는 추억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 둘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자치 단체들은 낡은 것들은 밀어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고 깔끔하게 단장하는 것을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깔끔한 현대식 구조물들을 만들어 놓으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은 낡은 것보다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번쩍이는 대리석과 시멘트 건물에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거나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구의 근대 골목의 경우 아직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옛날의 추억과 함께 독특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거기에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나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와 같은 소설의 이야기들이 더해지면서 전국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그런 점에서 보면 삼국유사의 마지막 집필지인 인각사가 있는 군위군이 일찍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고 삼국유사를 테마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자치 단체가 역량을 발휘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낡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을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것은 건물이나 사물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에도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깝치다'라는 말을 까불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깝치다는 재촉하다는 뜻이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학생들은 그냥 자기들이 쓰는 문맥대로 깝치다를 쓴다. 그러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으면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라는 부분을 배우면, '깝치다'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재촉하다는 뜻으로 알게 된다. 이전의 칼럼에서 다룬 '짜장면'도 '자장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표준어가 아니라고 해도 짜장면으로 쓰는 것이다.
지금은 국어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되어 있고, 나 역시 검인정 교과서를 만드는 데 참여를 했었다. 검인정 교과서가 다양성과 참신함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국어 교과서는 세대를 공유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와 딸이 오영수의 '요람기'에 나오는 범버꾸범버꾸 하던 춘돌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시든 백합처럼 늙어가는 아사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렇게 해서 세대와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삶은 좀 더 넉넉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없는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고 초라해지지만, 이야기가 풍부한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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