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조선왕조실록 편찬과 보관이 주는 지혜

최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지 않았다는 문제로 허술한 기록물 관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라진 사초(史草)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여야 간 책임 공방도 뜨겁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자료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조선왕조실록'은 공식적으로는 1대 태조로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472년(1392~1863)간의 기록을 말한다. 편년체로 서술한 조선왕조의 공식 국가기록으로서, 조선시대의 정치'외교'경제'군사'법률'사상'생활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까지 편찬된 점을 고려하면 조선의 27대 왕의 행적 모두가 실록으로 정리되고 보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사후에 전왕의 실록이 편찬되는 방식을 취하였다. 왕이 사망하면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실록청에는 영의정 이하 정부의 주요 관리들이 영사(領事)'감사(監事)'수찬관'편수관'기사관 등의 직책을 맡아 실록 편찬을 공정하게 집행하였다. 실록청에서는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와 시정기(時政記)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실록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책은 편찬이 완료되면 왕에게 바쳤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예외였다. 편찬의 완성만을 총재관이 왕에게 보고한 후 춘추관에서 봉안 의식을 가진 후 춘추관과 지방의 사고에 보관하였다. 왕의 열람을 허용하면, 실록 편찬의 임무를 담당한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받지 못하고 사실(史實)이 왜곡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실록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을 사관(史官)이라 칭하였다. 사관은 왕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여하여 보고 들은 내용과 자신의 논평까지를 그대로 기록하였는데 이를 사초라 하였다. 사초는 사관들이 일차로 작성한 초초(初草)와 이를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중초(中草), 실록에 최종적으로 수록하는 정초(正草)의 세 단계 작업을 거쳐 실록에 실었다.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왕조차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한편 자료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하였다. 세종도 '태종실록'을 열람하려 했지만 사관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실록의 편찬에는 사초 이외에 시정기 기록이 적극 활용되었다. 시정기는 각 관청에서 시행한 업무들을 정리한 것으로, 관상감일기, 비정부등록. 승정원일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시정기의 기록이 실록 편찬에 활용됨으로써 실록의 내용은 보다 풍부해질 수 있었다.

편찬이 완료된 실록은 춘추관에서 실록을 봉안하는 의식을 치른 후에 서울의 춘추관과 지방의 사고에 각 1부씩을 보관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 등 지방의 중심지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중심지는 화재와 약탈 등 분실의 위험이 제기되었으며, 실제 중종대에는 관리인들이 비둘기를 잡으려다 성주 사고가 화재를 당한 적도 있다. 급기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주사고의 실록을 제외한 모든 실록이 소실되면서, 조선 후기에는 실록이 모두 산으로 가게 되었다. 후대에까지 길이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험준한 산지만을 골라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설치했다.

서울의 춘추관사고를 비롯하여 강화도의 마니산사고,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사고,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사고,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사고가 그것이다. 그 후 조선 후기 지방의 4사고는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으로 확정되었고 이 체제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지속되었다.

사고에는 정기적으로 사관을 파견하여 포쇄(실록을 햇볕과 바람에 말림)를 하게 하였고, 실록을 점검하거나 포쇄한 경우에는 장서 점검기록부에 해당하는 실록형지안을 작성하여 실록의 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을 거의 온전한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까닭은 선조들이 기록물 편찬에 만전을 기하고 이를 철저하게 보관해 왔기 때문이다. 불과 6년 전에 작성된 기록물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가 않다.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