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일제 처단과 조선총독부 폭파 앞장 황상규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지 않고 대중을 위하여 일하다 밖에서 죽겠다." '조선독립을 희망, 의열단을 조직, 무기를 반입하여 조선총독부 요인, 대관,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중요 관공서를 파괴하여 일반의 인심을 자극, 조선 독립에 경주하도록 하고 친일 분자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준비하는 등 치안을 방해한 자'로 몰려 1921년 7년 옥살이 뒤 1931년 오늘 죽을 때까지 짧은 삶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황상규(黃尙奎·1890∼1931).

일찍 고향에서 역사책을 지어 가르치는 등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1913년 경북 풍기에서 시작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들어가 대구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 사살 활동에도 참여했다. 일제 감시 탄압으로 1918년 길림(吉林)으로 망명했다. 19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서 활동했다. 같은해 김원봉(金元鳳)'곽재기(郭在驥) 등과 의열단(義烈團)을 조직, 이듬해 일제 응징과 친일 매국노 암살, 조국 독립을 위해 국내로 잠입했다.

동료들과 무기를 밀양에 숨겨두고 조선총독부 폭파 계획을 세우다 조선인 경찰(김태섭 등)에 잡혀 소위 '밀양폭동(폭파)사건' 주모자로 이름을 알렸다. 밀양은 1919년 3·1운동 때 150여 명이 무차별 사격에 학살된 곳인데 그는 출옥 뒤에도 고향을 지키며 신간회 서기장, 조선어학회 간부 등으로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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