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이라고 했고, 천지라고 했다. 사람은 남녀가 만나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 상례이듯이 풍진세상을 그렇게 파도 타듯이 함께 타고 넘는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드시 반려자가 있어 외로울 때 같이 외로워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한다. 반려자는 곧 부부이다. 유리왕은 왕비 송 씨가 일찍 죽어 2명의 여자 계실을 맞이하였는데 화희와 치희였다. 화희가 치희를 시기해 싸우다 치희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유리왕이 나무 밑에 앉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불렀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가 정답구나
외롭고 외로울사 짝 잃은 내 신세여!
곁 떠난 임 생각 하나뿐, 뉘와 함께 돌아갈까.
翩翩黃鳥 雌雄相依
편편황조 자웅상의
念我之獨 誰其與歸
염아지독 수기여귀
【한자와 어구】
翩翩: 가볍게 훨훨 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黃鳥: 누런 새. 꾀꼬리/ 雌雄: 수컷과 암컷/ 相依: 서로 의지하다/ 念: 생각하다/ 我之獨: 내가 홀로다('之'는 주격 조사로 쓰였음)/ 誰: 누구/ 其: 그(지시대명사로 쓰임)/ 與歸: 같이 돌아가다('誰' 때문에 의문문으로 쓰임).
'외롭고 외로울사 짝 잃은 내 신세여!'로 제목을 붙여본 사언고시(四言古詩)다. 작자는 고구려 2대 유리왕(瑠璃王'재위 BC 19∼AD 18)으로 부여로부터 아버지 동명성왕을 찾아와 고구려에 입국, 태자로 책립되어 즉위했다. 재위 3년 도읍을 졸본성(홀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으며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고도 부른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사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라고 번역된다. 유리왕의 설화에 나오는 삽입 가요로, '구지가'(龜旨歌)가 주술적인 집단 무요(舞謠) 또는 노동요의 성격을 띤 시가인 반면, 이 노래는 고대인의 이별을 소박하게 노래한 개인적 서정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보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작품의 주제 또한 평이하여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느끼게 한다.
시인의 노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사랑하던 임을 잃은 외로움과 슬픔'이다.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寓意)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리왕은 일찍이 아버지를 이별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후 어머니 곁을 떠나 남방으로 방랑하게 되었고, 끝내는 왕비까지 잃게 되는 등 애초부터 정에 굶주렸다. 두 계비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희를 잃게 되자 인생무상을 느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때마침 정답게 펄펄 나는 한 쌍의 꾀꼬리는 두 계비의 시샘과 자신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비애감을 더했으니 시의 모티브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유리왕, 주몽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예(禮) 씨이다. 이름은 유류(孺留)라고도 하였다.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BC 19년 동명성왕에 이어 즉위하였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도읍을 홀본(忽本'졸본)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황조가는 BC 17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희는 골천 사람의 딸이고, 치희는 한나라 사람의 딸이다. 두 계비가 서로 사랑을 받으려고 다퉈 화목하지 않자 유리왕은 양곡(凉谷) 동쪽과 서쪽에 궁을 따로 지어 각각 살게 했다. 왕이 사냥을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은 사이 두 여자는 또 싸웠다. 화희가 '한(漢)나라 집안의 천한 계집으로서 어찌 무례함이 이렇게 심한가?'라고 욕하자 치희는 분을 못 참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갔으나 치희는 화를 내며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일로 왕이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그 느낌을 노래한 게 '황조가'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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