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교육청에서 30년 근무했다. 2008년 말 은퇴하자 실컷 놀고 싶었다. 놀고 또 놀았다. 여행도 마음껏 하고 게으름도 원도 한도 없이 피웠다.
그러기를 3년. 어느 날 가방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득 또다시 '출근'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다.
김종선(63'여'대구시 북구 관음동 서한아파트) 씨. 그도 잠시 당황했다. 그 지긋지긋한 '출근'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사실이 놀라웠다. 직장을 찾아 나섰으나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도시철도 1호선 문양역에서 그는 하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나비 넥타이를 메고 일하는 바리스타를 보는 순간 '저것이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길로 바리스타 교육장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그 문이 열렸다. 그는 지금 인턴사원으로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나이를 생각하면 일하기 어렵다. 내 아들보다 훨씬 어리지만 일터에서는 선배다. 모르는 것은 묻고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어려운 일은 내가 먼저 한다. 솔선수범이 젊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오랜 직장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뽑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커피점을 운영할 계획인가.
"아니다. 그냥 이렇게 일을 계속하고 싶을 뿐이다. 가게를 꾸리면 그날부터 걱정이다. 그냥 즐겁고 신나게 다닐 수 있는 직장이면 최고다. 이 나이에 직장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이다. 직장 환경도 아주 좋다. 하루 종일 이렇게 멋진 커피향이 있는 일터가 어디 있겠는가. 호호."
-일을 다시 한다고 할 때 가족의 반응은?
"남편은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마누라가 나가면 밥은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잘 알아서 하더라. 밥을 직접 차려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 해결했다. 남편은 밥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다니라고 말한다. 아들 둘은 엄마의 새로운 일을 아주 반겼다. 며느리들도 좋아했다."
-바리스타 일이 어렵지는 않은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아했지만 직접 뽑고 내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손에 익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용어를 외우고 커피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3주간 힘들게 공부했다. 60세 이상 주부들이 함께 배우는 재미에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북구시니어클럽처럼 우리 주변 곳곳에 취업을 도와주는 곳이 많다. 재취업을 하려면 이런저런 곳을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월급을 탔다. 기분이 어땠나.
"퇴직하고 5년 만에 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벌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정말 가슴이 떨렸다. 첫 월급 받을 때보다 더 좋았다. 제일 먼저 고생한 남편에게 멋진 밥을 대접했다. 아들 며느리와도 근사한 곳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뿌듯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긴장하며 살게 되는 것도 좋았고 새롭게 도전하는 내 모습도 자랑스러웠다."
-은퇴하고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직장생활은 열심히 하면 보상이 주어진다. 그런데 가정일은 보상은커녕 안 하면 표시가 났다. 그 점이 가장 힘들었다. 또 낮에 직장 일을 하고 밤에 집안일을 하는 오랜 습관 때문에 집에서 놀아도 해가 져야 집안일이 손에 잡혔다. 3년 동안은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닌다고 거의 이웃을 모르고 살았다. 이웃들과 새롭게 인사하고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은퇴를 앞둔 여성 직장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때만 해도 아무 준비 없이 은퇴한 세대였다. 집에 있어보니 역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생활을 서서히 준비할 것을 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웃고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친구만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색다른 도전이 비교적 쉽다."
-퇴직 후 여러 가지를 배웠다.
"요가도 하고 동화구연도 했다. 동화구연은 나중에 손자를 볼 때 좋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적성에 딱 맞았다. 3급 자격증도 땄다. 여건이 되면 유치원 선생님도 하고 싶다. 할머니 선생님 생각만 해도 멋지다."
-아주 젊어 보인다. 비결이라도.
"우선 머리가 늙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매일 신문을 소리 내어 읽는다. 신문을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 내어 읽으면 내용 파악도 쉽고 잘 이해된다. 물론 기억도 오래간다. 신문을 읽어야 세상 흐름을 알 수 있고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생긴다. 두 번째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자그마한 것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너무 교과서 같은 이야기인가. 아무튼 표현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 며느리와 사이 좋은 것도 이런 이유다."
-며느리와 잘 지내는 그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가.
"우선 돈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잔소리를 하지 않고 항상 칭찬해 주는 것이다. 입이 간지러울 정도로 '착하다'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내가 어른인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사이가 멀어진다. 그냥 같은 길을 가는 여성동지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열린다."
-소원이 있다면.
"큰 것은 없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남편과 사이가 좋아 보인다.
"요즈음 나이 든 남편들 모두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닌가.(웃음) 많은 것을 도와준다. 청소하기 설거지하기 등등 예전에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럴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고맙다' '당신 덕에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측은하게 봐주면 될 것 같다. 오늘도 한바탕 칭찬해주고 나왔다. 당신 같은 멋진 남편이 있어 이렇게 직장에 나갈 수 있다고. 뭐 이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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