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45·끝> 섬이자 산인 그곳, 울릉도

울긋불긋 성인봉 원시림… 넘실넘실 검푸른 물결… 전설 품고 절경 새기다

울릉도는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오전 9시 50분 울릉도행 여객선에 오르며 들떴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다는 갈수록 거칠어졌고, 30분이 지나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배는 너울을 타고 상하좌우로 흔들거렸다. 2시간이 넘자 객실 곳곳에서 신음 소리와 토악질이 뒤섞였다. 선실 바닥은 널브러져 멀미를 견디는 이들로 빼곡했다. 메슥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켰지만 몸은 천근만근. 꼼짝달싹할 힘도 없었다. 파도와 맞닥뜨린 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미칠 듯한 멀미와 싸운 지 6시간 만에야 땅 위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울릉도는 바다 위로 솟아난 산봉우리 자체다. 해안선과 바다는 거침없이 마주 닿는다. 덕분에 섬 전체에는 기암절벽과 검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이 이어진다. 산과 바다 모두 허투루 지나칠 풍경이 없다. 울릉군은 버스로 다니기 좋은 섬이다. 마을 대부분이 해안에 있고, 버스가 해안도로를 따라 자주 운행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우산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

공식적인 울릉도 개척이 시작된 건 1883년부터다. 하지만 울릉도의 역사가 짧은 것은 아니다.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지증왕 13년(5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벌에 나설 정도로 해상세력을 유지했다. 신라 복속 이후에도 우산국은 고려 초기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울릉군 서면에서 북면까지 닿는 해안에는 옛 우산국의 자취가 기암과 고분에 남아 있다.

오전 8시 40분 도동항에서 천부행 버스에 올랐다.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하다. 사동항을 지나 거북바위와 통구미를 지나면 울릉군에 단 2개뿐인 신호등이 있다. 교차로가 아니라 터널 앞이다. 차 한 대 지나가기도 좁은 통구미터널과 남통터널 앞에는 양방향에서 교대로 지나기 위한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도동항에서 25분을 달리면 서면 남양리다. 우산국의 흔적이 설화로 남은 곳이다. 거대한 투구모양의 바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산국의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하며 벗어놓은 투구라 투구봉이다. 맞은편에는 사자바위도 있다. 이사부는 나무 사자를 배에 세워두고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들을 풀겠다고 위협해 우산국을 정벌했다. 마을 안으로 500m가량 들어가면 개천 옆으로 비파산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국수가락과 닮았다 해 국수산이라고도 부른다.

해안을 타고 돌던 길은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처럼 산속으로 숨어든다. 15분을 더 달려 태하리에 내렸다. 바닷가 방향으로 500m 정도 걸어가면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이 나온다. 300m가량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내리는데 창밖으로 울릉도의 서쪽 바다와 솔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태하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태하등대와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는 옥빛 바다와 아늑한 해안선, 우뚝 솟은 검은 절벽이 어우러지는 대풍감의 절경을 볼 수 있다. 왼쪽 절벽에는 키 작은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오른편에는 북면의 거친 해안선이 눈에 들어왔다. 모노레일 입구로 내려와 해안 방향으로 가면 태하황토굴과 해안산책로가 있다. 황토굴은 깊게 파고든 거친 동굴 아래 주황색 황토와 검은 바위가 묘한 색의 대비를 이뤘다.

태하리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달리면 현포리다.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된다.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 노인봉과 코끼리 모양의 공암이 묘하게 어울린다. 옛 우산국의 흔적은 현포리고분에 남아있다. 흙 대신 돌을 쌓아 둥글게 만든 적석총이다. 미역취밭 한가운데 있는 고분군의 신세는 처량해 보였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넘어

낮 12시 35분 천부항에서 내려 나리분지행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그렁거리며 힘겹게 산비탈을 올랐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너른 땅은 끼워 맞춘 퍼즐 조각처럼 밭이 펼쳐졌다. 마침 김복남(76) 할머니 부부가 밭에 마늘을 심고 있었다. "예전에는 참 살기 힘들었지. 햇볕이 약해 벼농사가 안 되니 옥수수나 감자 농사를 짓는데 감자가 콩알 만해서 깎지도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었어요." 여름 더위가 꺾이고 오징어철이 되면 남자들은 천부항 근처에 움막을 짓고 고깃배를 탔다. 눈이 오면 다래덩굴로 만든 설피를 신고 투막집 지붕까지 쌓인 눈 위를 걸어다녔다. 배고픈 춘궁기에는 산속을 헤매며 명이나 고비 같은 산나물을 캤다. "30~40년 전에는 40여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16가구만 남았어요. 다들 육지로 나가거나 마을 밖으로 갔지. 그래도 지금은 살림이 낫지. 외지 사람들도 많이 오고. 식당도 4군데나 생겼으니." 마을 안에는 전통 가옥인 귀틀집과 투막집이 있다. 통나무와 진흙으로 벽을 만들고 집 둘레에 옥수수대로 만든 우데기를 돌려 눈과 비바람을 막는 구조다.

성인봉을 넘어 도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8.2㎞ 구간인데 만만치 않다. 신령수까지 숲길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본격적인 등산은 신령수부터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울퉁불퉁한 길은 가는 계곡을 건너자마자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접어든다. 급경사 계단을 1,7㎞ 가까이 오르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오르고 자주 숨을 고르지 않으면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다. 가쁜 숨으로 전망대에 서니 알봉분지와 미륵봉, 송곳산과 성인봉의 원시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단이 끝나고 한결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정상 직전에 500m가량 더 계단을 올라야 한다. 성인봉(986m) 정상은 좁고 밋밋했다. 대신 북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가 있다.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초가을 숲과 일렁이는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냈다. 숨을 돌리고 도동 방향으로 내려섰다. 올라온 길만큼 가파른 내리막이다. 구름다리와 출렁이는 현수교를 지나면 KBS중계소와 대원사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대원사 방향이 도동항으로 바로 들어간다. 이미 주변은 어둠이 깔렸고 멀리 오징어배의 집어등이 바다 위에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해안절경을 따라 걷는 길

도동항의 아침은 밤새 잡아온 오징어를 다듬는 손길로 분주하다. 내장을 발라내고 깨끗이 씻어 대나무에 줄줄이 꿴 뒤 덕장에 말린다. 오징어 손질도 볼만한 광경이지만 도동항과 저동항 사이에는 해안 절벽을 따라 걸으며 파도를 감상할 수 있는 해안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길은 도동여객선터미널 뒤편의 방파제부터 시작된다. 거센 파도는 암벽을 파고들어 동굴을 만들고 거친 돌을 다듬어 미끈한 몽돌로 다듬었다. 해식동굴 입구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는 하얀 포말이 들이치는 섬의 속살을 볼 수 있다. 해안산책길은 몽돌해변 앞에서 바닷길이 끝나고 호젓한 숲길로 접어든다. 터널을 이룬 섬조릿대 터널을 지나면 해송이 울창한 숲길이다. 숲 속에는 샛노란 털머위꽃이 산등성이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까이 대보니 은근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숲길이 끝날 즈음, 우뚝한 등대가 나타난다. 행남등대다. 등대 앞쪽 절벽 위에 전망대가 자리 잡았다. 저동항과 저동마을, 방파제와 촛대암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죽도까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행남등대에서 해송숲과 대숲을 지나면 다시 해안산책로지만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인 탓에 막혀 있다. 저동으로 가려면 저동옛길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걸어다닐 좁은 오솔길이다. 묵직해지는 다리를 느끼며 40여 분가량 걸으면 저동항 옆 민가 옆으로 내려온다. 돌아오느라 놓친 저동 해안산책로를 가보기로 했다. 무지갯빛으로 칠한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발아래 검푸른 물빛이 아찔했다.

울릉도 최대 어업기지인 저동항으로 돌아와 봉래폭포행 버스에 올랐다. 정류장에서 내려 왕복 1.6㎞를 오르내리면 된다. 도중에는 지하에서 차가워진 바람이 흘러나오는 풍혈이 있다. 찬 바람에 잠시 땀을 식히고 800m가량 오르면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봉래폭포는 성인봉에서 발원해 원시림을 돌아 쏟아지는 물줄기다. 25m 높이의 3단 폭포가 떨어져 장관을 이룬다. 봉래폭포는 도동과 저동 주민들의 상수원으로 쓰인다. 하루 평균 3천t의 물이 쏟아진다니 놀랍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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