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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커피 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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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들 무사하랴. 이번에는 커피다. 데이트 나갔던 딸아이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제 방으로 쌩 들어간다. 엄마 등쌀에 세 번이나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자판기 커피만 권하더라는 것이다. 식사비에 버금가는 커피는 사치라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딸은 커피를 음식값과 비교하는 남자가 불편했고, 남자는 여자의 커피 선호가 거북했던 모양이다. 난감한 일이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만난 건가.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둘만의 오붓한 자리를 마련한 남자가 다방에서 커피를 시켰을 때였다. 오후였는데도 남자는'모닝커피'란 것을 시켰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주는'특커피'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자에게 비싸고 좋은 것을 사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날계란이 싫었다. 비릿한 맛이 커피에 섞이는 건 더욱 싫었다. 커피 한 잔에서조차 영양가를 따지는 남자도 재미없었다.

난처했던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상식적으로 계란 노른자는 스푼으로 조용히 떠서 한 입으로 먹는 법이다. 그런 다음 커피는 커피대로 마시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남자는 스푼으로 노른자를 깨뜨리더니 커피를 훌훌 젓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커피는 커피 죽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것을 입가에 몇 방울 묻혀가며 허겁지겁 떠먹었다. '아, 그 코믹하고 갑갑한 모습이라니!'

딸아이가 제 방에서 비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하필이면 바흐의 '커피 칸타타'다. 영주(領主)의 딸이 시집은 안가고 커피를 마시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영주가 단단히 화가 났다.

"아, 이 몹쓸 딸 같으니! 커피 좀 그만 마시고 시집이나 가라니까!"

"오, 아빠 그런 말씀 마세요. 커피를 못마시면 나는 아마 구운 염소고기처럼 쪼그라들고 말거예요. 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는 이 커피를!"

'똑! 똑!' 아이의 방문을 연다. 쟁반 위에 에스프레소 두 잔을 준비했다. 일반 커피의 10배를 농축하여 진하고 쓴 맛이다. 비디오를 끄고 아이 옆에 앉아 눈을 맞춘다.

"요즘은 애견카페에서도 커피 향내를 풍겨 개들이 신났다네요."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선수를 친다. "자판기 커피도 취향이야. 바흐도 달짝지근한 일회용 커피를 좋아했다더구만."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딸이 얼굴을 찡그린다. 바로 이 때다! 주먹을 들어 딸의 머리를 힘껏 쥐어박는다. "인생이 본디 쓰디 쓴 거다. 아무려면 남자가 커피보다 못할까."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giok0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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