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12월에는

흐르는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더니 어느덧 2013년도 달력 마지막 한 장을 향해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온 것도 아니고 안 온 것도 아닌 거 같은 첫눈이 대구에도 내리고 영하의 날씨까지 안겨다 주었다. 긴 겨울로 들어섰음을 실감케 한다. 지난겨울 대구에 유독 12월 눈이 많았던 탓에 올겨울도 그러면 또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군대에서도 해본 적 없는 제설작업을 수성아트피아에 와서 제대로 해본 지난겨울이었다. 갈수록 크리스마스, 연말 기분을 느끼기 힘든 세상풍경이 되어가고 있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우리에게 12월은 다른 어느 달보다 추억과 설렘이 많은 달이었다.

언제부터 12월의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졌을까? 우리 어릴 적엔 가수는 물론 코미디언들까지 12월이면 재밌는 캐럴 음반을 내놓곤 했었는데 말이다. 큼지막한 트리까진 아니더라도 나뭇가지에 반짝이는 전구, 종, 리본 등으로 집집마다 약식(?) 트리들을 만들어놓곤 했었다.

또 하나의 캐럴이 되어버린 웸(Wham)의 'Last Christmas'. 이 노래가 나온 1985년, 빡빡머리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현실에선 있지도 않을 멋진 만남, 이벤트를 상상하며 방구석에서 이 노래만 주야장천 들었던 것 같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개봉된 1989년 12월. 이 영화를 같이 볼 여학생을 만들기 위해 별별 궁리를 다 짜내다가 결국은 겨울을 다 보내고 새 학기를 맞이한 고3 수험생. 사실 10대에 맞는 로맨스영화와는 꽤 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결혼 전 건이 엄마와 같이 본 '러브 액츄얼리'. 이제는 명배우 반열에 오른 콜린 퍼스가 청혼을 위해 동네 사람들 다 대동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왜 눈물을 글썽였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고선 아예 DVD를 사놓고 집에서 건이 엄마와 이 영화를 몇 번이고 같이 봤었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이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캐럴의 고전이 된 것 같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50대 이상의 중년층이 기억하는 겨울 영화 최고작은 단연 '러브스토리'일 것이다. 라이언 오닐이 눈 내리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그녀는 베토벤과 비틀스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로 시작하는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 너무도 패러디를 많이 해서 요즘은 아이들도 흉내 내는 '눈 장난 장면', 그러나 그 시절 어른들은 마음만 굴뚝 같고 감히 시도해본 이들은 많지 않았었으리라.

그 시절에 비하면 참으로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많아진 12월이다. 연말 분위기가 안 난다는 게 경기, 시국 등 이유보다도 즐길 거리가 많아진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올 연말엔 가족, 연인에게 12월이면 찾아오는 좋은 공연 선물 하나 어떨까?

최 영(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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