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병변장애 앓는 이상조 군

"개구쟁이 아들, 두 발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이상조(11
이상조(11'경북 경산시 임당동) 군과 어머니 전정민(36) 씨가 장난을 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전 씨는 "장난칠 때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점점 커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상조(11'경북 경산시 임당동) 군은 통나무 같은 다리 보호대가 갑갑해 자꾸 풀어달라고 떼를 써 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전정민(36) 씨는 못 이기는 척 "잠깐만 풀어줄게"라며 아들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보호대를 하나둘씩 벗겨 낸다. 그리고 앉으면 잘 넘어지는 아들을 위해 베개를 허리에 받쳐 준다.

전 씨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을 들고 옮길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점점 몸무게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제 한창 성장할 시기라는 게 느껴진답니다. 요즘은 솔직히 힘에 부치네요. 일어서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좀 나을 텐데…."

◆한 번 꺾여버린 '일어서기'

상조 군은 현재 뇌병변장애 1급 환자다. 임신 8개월째에 태어나 정상적으로 호흡을 하지 못했다. 인큐베이터를 나와서도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서울의 모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았고, 그때서야 어머니 전씨는 아들의 뇌병변장애 사실을 알았다.

전 씨는 아들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적어도 일상적인 생활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3살 때까지는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워 놓으면 안전바나 지지할 수 있는 가구 등을 붙잡고 몇 분 동안 서서 버티곤 했다. 그래서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희망은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경기를 너무 심하게 하더라구요. 한 번은 뇌사까지 갈 뻔한 적이 있었죠. 그때부터 상조는 더는 일어서지 못했어요."

아들은 지금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곤 누워 있다가 혼자서 뒤집어 엎드리는 것, 그리고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것뿐이다. 방 안에 아들이 일어서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보조기구들은 한 켠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학교는 재미있지만 병원은 두려워

상조 군은 지난달 24일 다리 수술을 받았다. 3살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던 탓에 다리가 자꾸 제대로 펴지지 못하는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고관절부분의 탈골 증상과 척추 측만증까지 겹쳐 있는 상황. 병원은 다리 수술과 함께 고관절 탈골 수술을 동시에 권유했지만 수술비 마련이 힘겨웠던 전 씨는 다리 근육 수술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상조 군은 어머니 입에서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큰 소리를 내거나 전 씨를 잡아끈다. 병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경기를 일으켜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면 소리를 많이 질러요. 아마 그때 너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나 봐요. 게다가 얼마 전에 큰 수술도 했잖아요. 병원 이야기 나오면 무서워해요."

상조 군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학교다. 뇌병변장애 때문에 11살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지만 다행히 같은 반 친구들이 잘 챙겨주고 성격도 활달한 편이라 적응이 빠르다. 또 의사 표현이나 상황 판단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학급과 장애학급을 오가며 통합교육을 잘 받고 있다.

하지만 상조 군은 수술 이후 한 달이 넘도록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 '학교 가고 싶다'면서 떼를 쓰며 운 적도 있어요. 상조에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친구들을 만나고 노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그래도 징징대거나 아프다며 울지 않고 항상 밝게 지내 다행이에요."

◆상조는 점점 자라고 있는데…

전 씨는 가끔 아들이 "엄마, 나 때문에 힘들지?"란 말을 할 때마다 흠칫 놀란다. "어느 날은 상조를 목욕시키고 있는데 들어 옮기는 것도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더라구요. 그날은 또 상조가 물장난을 많이 친 날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엄마 힘들어, 그만해'라는 말을 했나 봐요. 그걸 들은 상조가 '엄마, 나 때문에 힘들어'라고 하는데,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5년 전 이혼한 전 씨는 지금까지 상조 군을 홀로 키우고 있다. 이혼 이후 치료비는 전부 전 씨의 몫이다. "이번 다리 수술 비용도 겨우 마련했어요. 2년 전에 수술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모으다가 도저히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지경까지 되다 보니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400만원을 겨우 낼 수 있었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재활치료들은 아예 포기하고 있어요."

이혼 이후 전씨는 대부업체에서 생활비를 빌리곤 했다. 지금까지 빌린 돈은 약 800만원. 조금씩이라도 빌린 돈을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자활사업을 다니며 받는 급여 70만원에 상조 군의 장애수당 20만원까지 합치면 한 달 수입은 겨우 90만원 수준. 매달 병원비와 빚 갚는 데 수입의 절반을 쓰다 보니 항상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전 씨는 아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움직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상조는 개구쟁이예요. 움직이는 걸 좋아하죠.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적어도 전동휠체어라도 작동할 수 있어서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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