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의 한·일이야기] 역사를 말소하는 수법

일본 문부과학성은 11월 15일 역사교과서에 정부 견해를 싣도록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꾸고, 개정 교육기본법에 기초해서 편집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학교 교과서 '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변경된 교과서 검정 기준은 학설에서 미확정인 사항은 균형 있게 취급하고, 정부견해와 확정된 판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봄부터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이 새 기준이 적용된다.

균형 중시, 정부 견해 존중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제로는 난징(南京) 대학살과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대한 기술을 삭제 또는 수정하라는 것이다. 문과성이 새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정책변경은 자민당 특별부회가 지난 6월에 만든 문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자민당 특별부회는 "희생자 수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는 난징사건"과 "강제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많은 교과서의 자학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적고 있다. 난징 대학살, 위안부 강제 동원, 자학사관이란 세 가지 논점에는 아베 내각이 과거 침략 사실을 부정하려는 수법이 잘 드러나 있다. 아베 내각이 과거 침략을 부정하는 수법은 네 가지 유형이다.

첫째, "학살당한 자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학살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수십 년 전부터 집요하게 강변한 것이다. 난징 대학살이란 움직이지 못할 사실을 없었던 것인 양 말한다. 법무대신, 문부과학대신, 총무대신, 오사카와 나고야의 자치단체장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둘째, "99명이 동의하고 1명이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쌍방의 주장을 균형 있게 기술하라"는 것이다. 난징 대학살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최근에 있었던 원폭 만화 '맨발의 겐'의 열람을 제한한 사건, 일왕의 군대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자결을 강요한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한 2007년 교과서 검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집안에 침입해서 유괴하듯이 연행해 갔다고 자백한 기록은 없다. 따라서 위안부 강제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자백한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상 피해자들의 증언들은 모두 거짓이라는 강변이다. 제1차, 제2차 아베 내각 총리의 말이다.

넷째, "검은색과 회색과 흰색의 경계선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검은색은 회색이며 회색은 흰색이다"는 논리다. 아베 총리가 올해 4월에 일본의 과거 침략에 관련하여 한 발언이다. 우스꽝스럽다. 아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땅과 하늘과 우주를 나누는 경계선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땅은 하늘이요 하늘은 우주이다!"

역사인식은 국가마다, 또 국가 안에서도 소속, 이해관계,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일 간에도, 한국과 일본 국내에서도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 심각해진 역사논쟁은 역사인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그러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느냐의 문제이다. '역사 왜곡'에 앞서 '역사 말소'의 문제인 것이다. 현재 일본이 과거 침략역사를 부정하는 수법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한국 정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NLL 발언 기록문제이다. 작년 말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약 1년 동안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그 기록을 삭제, 개찬, 은폐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도 그러한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11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은 수사결과에서 NLL 포기는 북한 김정일이 한 발언이고 회의록 초본과 수정본 사이에는 차이가 없으며 수정본은 음성기록에 따라 초본을 수정한 것임을 분명히 인정했다. "노무현의 NLL 포기"도, "회의록 삭제, 개찬, 은폐"도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없었던 것을 있었던 것인 양 만드는 수법으로 대북 안보정책을 장난하고 여론을 오도해 온 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히로시마시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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