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국민도 좀 안녕하자

요즘 가장 유행한 말은 어느 대학생이 썼다는 대자보 제목 '안녕들 하십니까?'가 아닐까 싶다. 마치 어떤 만남의 자리에 들어서면서 여럿에게 건네는 평범한 인사말이나, 또는 한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던 행상의 인사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편견일지는 몰라도, 요즘 시끄러운 정치판에다 대학교에 학생이 써 붙인 대자보의 제목이란 것을 연관시키면 '안녕하지 못함'을 전제했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대자보의 내용처럼 '왜 안녕하지 못하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깔려 있어서다. 행복한 삶의 추구가 참이라고 전제해도 행복이라는 낱말에 대한 생각과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 좀 확대하면 사회나 정치적인 안정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낱말은 대개 모두가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사회와 정치, 안정이라는 개별 낱말에 대한 해석과 그것으로 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아가 그 주제가 어떤 것이든 생각과 주장은 자유지만, 개인의 생각을 통념인 양 강요하는 사회는 병들고, 비민주적인 사회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정권의 초기 때 많은 혼란을 경험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개혁 드라이브가 보수 세력과 부딪쳤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해 용산 참사에 발목이 잡혀 정권 초기의 중요한 시간을 허비했다. 대개 정권 초기는 대통령의 힘이 센 편인데 벌써 몇 번째나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시끄러운 것을 반복했다. 공과(功過)야 제각각이지만, 통치력만을 두고 본다면 이들을 좋은 대통령이라고 하기 어렵다.

지금도 비슷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대선 불복, 정권 퇴진 요구로 이어지고, 철도 파업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조용하다.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는 대화를 통해서나 여론을 충분히 들은 것이 아니라 혼자서 낸다. 올바른 정답(正答)이 아니라 정치적인 정답(政答)의 되풀이다. 이러니 성(姓)만을 두고 보면 박통(朴統)이 분명한데 무통(無通), 불통(不通)이라 불리는 모양이다.

코레일의 문제가 국가적 문제로 확대된 철도노조 파업만 해도 그렇다. 요지부동의 정답을 정해놓고 서로 자기 주장만 옳다고 되풀이하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근로자가 코레일이나 정부 측의 약속을 못 믿겠다는 것은 근로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여러 약속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뒤집은 정부와 회사의 잘못이 더 크다. 그렇다고 국가 기간산업과 국민 불편을 볼모로 파업하는 노조도 잘한 것이 없다.

정치'사회적 사안에서 옳고 그름은 섞여 있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그른 일은 거의 없다. 수능시험처럼 정답을 골라야 하는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어떤 생각이 같다, 다르다의 차이일 뿐이다. 당연히 내 주장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야 대화의 실마리가 잡히고, 타협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철도 파업을 해결해야 할 양 주체는 극한 충돌도 모자라 서로 '국민과 함께' '국민을 위해'라며 국민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Which side are you on?)며 선택을 요구한다. 해도 해도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맹자는 양(梁) 혜왕과의 대화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날이나 정치나 다르지 않다(刃與政 無以異也)'고 했다. 백성의 고통에 대한 책임의 무게 추를 나쁜 정치 쪽에 실어 경계한 것이다. 철도 파업에 대한 코레일과 정부, 노조의 명분이 어떻든 국민 대다수를 불안케 하는 것은 소통 부재가 낳은 나쁜 정치의 결과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예. 안녕합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빈곤이나 기아, 전쟁 등 거창한 주제를 두고, 이런 것이 해결 안 되는 데서 오는 안녕하지 못함은 좀 제쳐 놓자. 그래도 막무가내로 벽을 문이라고 들이밀면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뜻의 낱말이라고 강요하는 것을 참기란 쉽지 않다. '%#☆※?'(공개적으로는 내뱉으면 안 되는 쌍소리다. 방송이라면 삐 하는 소음으로 가릴 수 있지만, 글은 가릴 수가 없다)가 맴맴거린다.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머릿속과 입에서 늘 이 같은 쌍소리가 떠나지 않는데 어떻게 안녕할 수 있겠는가? 국민도 좀 안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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