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악어의 눈물

스탈린은 숙청된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더 큰 고통을 주는 가학(苛虐) 증상이 있었다. 숙청대상자로 찍은 사람을 안심시켜 놓고는 뒤통수를 치는 수법이다. 1920년대 소련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기자로, 무정부주의자인 미하일 바쿠닌의 전기를 쓴 유리 스테클로프(Yuri M. Steklov)가 그렇게 당했다.

대숙청이 한창이던 1938년 어느 날 스탈린은 불안해하는 스테클로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은 자네를 알고 있으며 믿고 있네. 자네가 걱정할 일이라고는 없네." 이 말에 그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날 밤 체포됐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스테클로프와 그의 가족이 보인 반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스탈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941년 감옥에서 죽었다.

소련 부총리였으며 나중에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에까지 올랐던 이반 아쿨로포(Ivan A. Akulov)는 더 기막히게 당했다. 그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뒤로 넘어져 치명적인 뇌진탕을 일으켰다. 스탈린은 그를 살리기 위해 외국에서 우수한 외과 의사까지 데려왔다. 아쿨로프가 싱겁게(!) 죽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간신히 생명을 건진 그는 고난에 찬 회복 기간을 거쳐 복직했으나 곧바로 체포돼 총살됐다.('파괴란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

히틀러가 보여준 가학성도 이에 못지않다. 1944년 7월 20일 '발키리 작전'이란 암호명으로 실행된 자신의 암살 음모 가담자에 대해 가혹하게 복수했다. 작전의 실행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즉결 처형됐고 나머지 공모자들도 혹독한 고문을 받고 도살(屠殺)됐다. 이 중 일부는 피아노 줄로 교살(絞殺)되거나 고기 거는 갈고리에 매달려 죽었다. 히틀러는 이런 끔찍한 처형 장면을 필름에 담아 반복해서 틀어봤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 12일 장성택의 사형이 집행된 뒤 17일 열린 아버지 김정일의 추모대회에 참석하기 직전까지 울고 있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글쎄다. 가택연금 시켰다가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불러내 공개 체포하는 방식으로 모욕을 주고, 기관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해 놓고 이틀 뒤 활짝 웃는 얼굴로 마식령 스키장 현장지도에 나왔던 사실에 비춰보면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울었다면? 아마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