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비판이 거센 가운데 한'일 우호를 위해 일본인 교사가 대구에서 교환 역사수업을 해 화제다.
26일 오전 대구 북구 성광중 2학년 4반 교실. 칠판 앞에 선 한 여성이 일본어로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최근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많은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는 알아야 합니다.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 민중들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한 손을 번쩍 든 천동근(15) 군은 "식민지 조선인들보다 편한 생활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답을 들은 여성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료화면을 가리키며 "사진 속 인물은 누구일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돌이 한 가득 담긴 수레를 끌고 가는 어린이 사진이었다.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 인물은 일본인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 일본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의 어린 학생까지 전쟁에 총동원하고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90분간 일본어로 수업을 이끌어간 여성은 일본 히로시마현 히토츠바시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히로타 가쓰에(58'여) 교사다. 히로타 씨는 동북아재단이 지원하는 '역사교사 해외교환 방문수업'의 하나로 성광중 일일 역사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섰다. 이날 성광중에서는 히로타 씨와 함께 히로시마현 이노구치묘진 소학교에서 온 사타카네 가즈노리(55) 씨도 특별교사로 참여했다.
두 일본인 교사는 최근 독도,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사실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일 관계를 풀겠다는 각오로 이날 교단에 섰다. 이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한일 양국 청소년에게 두 나라 간에 얽힌 과거사를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아픈 역사일수록 덮어두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두 나라가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라 판단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올 4월에는 대구지역 교사들과 함께 한일 양국의 시각을 골고루 담은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를 출판했다. 이달 18일 대구지역 교사들이 먼저 일본 학교를 찾았고, 이번에는 두 일본인 교사가 한국 학교를 방문했다.
첫 강의를 연 히로타 씨는 한국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 민중의 생활'을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전쟁터로 간 남학생과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된 여학생, 공습으로 폐허가 된 일본 등. 조선 식민지 모습으로만 알려졌던 사진 속 장면들은 일본 민중의 모습이었다. 히로타 씨는 "전쟁을 겪는 동안 일본인들도 매일매일 두려움에 떨며 지내야 했다. 전쟁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전쟁의 끔찍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한일 양국 학생들이 기억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과거 조선인을 차별하고 착취한 것을 반성하기 위해 일본인이 천안시에 세운 사죄비를 소개하며 "모든 일본인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일본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수업에서 사타카네 씨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실제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로 설명했다. 왜곡됐다고 알려진 일본 교과서를 한국의 학생들이 직접 보고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수업을 들은 홍성탁(15) 군은 "일본 교과서에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일본 내에 이러한 왜곡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맙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장철환(15) 군은 "일본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았고 침략 사실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앞으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협력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교환수업을 제안한 박재홍(45) 성광중 교사는 "한국과 일본이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아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며 "오늘 수업이 학생들에게 경색된 한일관계를 푸는 방법을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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