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쪽엔 설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도전에 나설 만한 상대가 없잖습니까?"
최근 만난 경북도청 공무원들은 기자보다 신문을 더 열심히 읽는 눈치였다. 정치면 쪽 기사를 꿰뚫고 있었다. 기삿거리를 찾고 있는 사회부 기자에게 도의 행정 현황과 관련된 말보다 정치 얘기가 더 많다. 왜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새누리당 공천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은 신문 정치면 기사를 인용해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벼슬이 좀 높은' 공무원들은 사석에서 이른바 친박의 역학 관계 등 기자도 자세히 모르는 구도에 대해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친절한 배경 설명도 곁들인다. 물론 친박과 지방선거에 대한 논문이 있을 리 없으니, 자신이 언론 기사를 관찰하고 몇몇 지인들의 얘기를 종합한 결과라는 근거도 내놓는다.
김 지사 측은 자신에게 유리한 신문 기사는 열심히 알리려는 노력도 한다. 김범일 대구시장의 사퇴 직후인 지난주말 그의 3선 도전을 보도한 매일신문 기사 내용을 도내 시군에 전파하고 잘 설명해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도청 공무원들이 요즘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는 지방선거 기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경북도청 사람들이 '김관용 경북도지사 새누리당 공천 확정'3선 성공'이라는 해답을 붙여놓고 느긋하게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사정이 많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대구시청 공무원들이다. 빨간 볼펜을 들고 신문 구석구석에 줄을 그으며 무언가 답을 찾으려는 상황이다. 김범일 대구시장의 출마 포기라는 메가톤급 폭탄이 대구시청 청사에 떨어진 이후의 일이다.
기자가 최근 소주잔을 함께 기울인 대구시 공무원들의 입에서도 당연히 선거 얘기가 유일한 화제였다. 후보는 누구누구인데, 누가 제일 유력한 것 같고, 누구는 이래서 안 될 것이고…. 신문에 나온 이름을 죄다 알고 있는 공무원들이 많았다.
소주가 한 잔, 두 잔 돌아가자 '무서운'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있었고 맞장구를 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김 시장이 물러나면 인사상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 △△△,……. 실명이 줄줄이 나왔다. 차기 시장을 사실상 확약받고 대구 정무부시장까지 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최고 인사권자였던 김 시장. '10년 권력'이 끝나는 시점, 공직사회는 이른바 '살생부'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직사회에서 줄서기를 하면 안 되고, 이는 망국의 근원이라는 기사가 아무리 쏟아진다 해도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웃기는 기사'일지 모른다.
"공무원들에게, 특히 사무관 이상 간부급에게 최고 인사권자의 진퇴 여부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사기업처럼 영업실적이 그래프로 기록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서…. 인사권자 마음 아닙니까. 어쩔 수 없어요." 어느 공무원은 신문 정치면을 매일 읽으며 단체장 선거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 공직사회의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어제(20일)는 공무원들의 월급날이었다. 설이 끼어 있어 이달 공무원들은 월급 외에 보너스도 챙겼다.
납세자인 우리 지역민들은 선거에 몰입 중인 공직사회에 물을지 모른다. "여러분 월급 어디에서 나옵니까? 시장님, 지사님 주머니에서 나옵니까?"
최경철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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