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내 사례 없어 다양한 해석, 마전리 우물과 비교해 결론

유병록 조사원 당시 발굴 회고

"우물은 단순히 물을 푸는 곳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길어내는 곳이죠."

1997년 동천동 취락유적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유병록 조사원(우리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부장)으로부터 당시 발굴 회고담을 들어봤다.

◆동천동 우물을 제사 유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데=보통 취락 유적에서는 주거, 묘역, 농사, 제의 공간이 구분된다. 대개 묘역, 제사 지역은 주거지 외곽에 자리한다. 동천동 우물은 마을의 한복판에 있어 이런 상식과 배치된다. 개인적으로 제사 유적이나 수변(水邊) 제의 공간 개념과는 관계가 멀다고 생각한다.

◆우물 속이나 도랑에 석기나 토기 파편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문자 이전 시대이고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명쾌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다. 국내 출토나 일본, 중국의 사례에서 볼 때 우물이나 구(溝)에서 파편들이 발견된 사례는 많다. 학계에서는 당시 농경사회였고 투척 행위의 공간이 물가 지역인 걸로 봐서 농경과 관련된 제의 행위로 보고 있다.

◆동천동 우물 유적의 실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조사팀이 처음 우물 유적과 맞닥뜨렸을 때 국내에서 첫 발굴 사례였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중 하나가 '솟대'를 꼽았던 자리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김해 장유면 율하리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 적이 있어 거기에 유추해서 내린 해석인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마침 논산 마전리 우물 유적이 출토돼 그곳 유적과 비교, 검토한 후 우물 유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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