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정도전/박봉규 지음/아이콘북스 펴냄
조선 건국공신이며 조선왕조 500년의 국가 경영체계를 확립한 정치사상가였으나 태종이 되는 이방원과 갈등을 빚다가 살해당한 인물 정도전. 역사서 '광인 정도전'은 조선을 백성의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던 정도전의 정치일생을 다룬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민심이다. 천하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심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백성을 진실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이 사상이 바로 정도전으로 하여금 '역성혁명'을 주도하게 한 원동력이자, 재상정치와 중앙집권적 관료체계의 기반을 확립하게 한 근거였으며, 이방원의 손에 그가 살해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도전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고려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역성혁명을 주도했다. 비록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가 되었지만 조선 건국을 기획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그는 42세가 되던 1383년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을 모의하기 시작했으며 역성혁명을 위해 온몸을 던졌다. 고려의 우왕과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웠으며 고려를 지키려는 조민수, 정몽주 등과 대립했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한고조가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참모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했다"며 자신이 이성계의 무력을 이용해 조선을 건국했다고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정도전과 이성계, 이방원은 도탄에 빠진 고려를 무너뜨리고 함께 조선을 개국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와 이방원이 꿈꾸는 나라는 달랐다. 정도전은 재상이 정치를 주도하는 국가를, 이방원은 왕의 나라를, 지배층은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었다. 모두 백성을 위한다고 했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정도전은 왕권의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든 임금이 성군이고 현자일 수 없기 때문에 왕권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것이며, 절대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훌륭한 재상이 국가를 잘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다소 현명하지 못하더라도 현명한 재상이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방원은 생각이 달랐다. 이방원의 눈에 정도전은 재상정치를 핑계로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신하에 불과했다. 이방원은 우매한 임금이 간교한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도전이 죽고 한참 뒤인 태종 11년 한 정치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개국 공신들이 정도전을 변호하면서 "정도전이 사사로운 원한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공정한 마음에서 한 행동이니 용서할 만하다"고 하자 태종은 "내가 정도전을 벌한 것은 천하만세의 계책을 위함이었다. 태조는 강하고 현명한 임금이었는데도 정도전과 같은 신하가 있었으니, 만일 후세에 용렬한 임금, 약한 임금이 있으면 신하가 정도전을 본받아 못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도전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방원이 옳았을까, 정도전이 옳았을까?
정도전은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잘살아야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진다'는 믿음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그가 그토록 과전법 시행에 매달렸던 것은 농민을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자작농이 많아야 이른바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천재라고 할 만한 정치가였다. 조선 개국 후 6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중앙집권적 관료체계의 기반을 확립했으며, 조선경국전, 경제문감을 통해 국가통치의 기초를 구축했고, 토지제도를 완성했다. 한양천도를 책임지면서 궁궐과 종묘의 위치, 전각의 이름까지 세밀한 의미를 담아 직접 지었다.
371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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