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公)이 공익을 만들어내고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공이란 글자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공은 공을 내세울 뿐 공익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공을 가림막 삼아 사익(私益)을 추구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세월호 참사가 깨쳐준 바다. 이런 사실은 이미 역사를 통해 여러 번 입증된 바 있다. 가깝게는 지난해 최장기 철도파업이, 멀게는 소련의 붕괴가 그 생생한 실례다.
특히 소련의 붕괴는 공무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준 체제도 팔아넘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데이비드 코츠와 프레드 웨이어라는 러시아 전문가의 연구결과가 그렇다. 이들은 소련이 붕괴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소련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으로, 노멘클라투라(러시아어로 '명단'이란 뜻)로 불린 소련의 고위 관료 수백 명을 인터뷰했다.
결론은 놀라웠다. 소련 붕괴의 원인은 '사회주의 사멸의 필연성'이나 소련 인민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노멘클라투라의 체제 배신이었다. 노멘클라투라는 고르바초프가 자신들의 권리와 특혜를 보호해주던 체제의 개혁에 나서자 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은 역사적 사실과 그대로 부합한다. 소련이 망한 뒤에도 러시아의 최상층부는 공산체제에서 지배계급이었던 집단이 차지했다. 푸틴 대통령부터 KGB(국가보안위원회) 엘리트 요원이었지 않은가.
자본주의 관료집단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도 정책을 결정할 때 사익을 따른다"는 '공공선택이론'이나 "관료들이 이익집단의 설득이나 대가 제공에 넘어가 이익집단에 유리하게 규제를 만들어낸다"는 '포획이론'이 이미 입증한 바다. 다른 것이 있다면 소련 관료집단의 '통'이 컸다는 것뿐이다. 이런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개조가 좌초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집단은 수술대에 올려졌으나 결과는 관료집단에 의한 '정부 포획'이었다.
이처럼 관료집단은 탐욕스럽기도 하지만 똑똑하지도 못하다. 관료 개개인은 똑똑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으로서 관료는 그렇지 않다. 계획경제 아래에서도 자원의 최적 배분이 가능한가를 놓고 벌어진 '사회주의 계산논쟁'에서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주장한 바다. 이 논쟁에서 미제스, 하이에크 등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계획경제에서는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 곧 시장이 없기 때문에 정부는 재화의 적정 가격을 결코 알 수 없고 따라서 자원의 최적 배분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반면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없어도 합리적인 가격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한 하이에크의 반격이 기가 막혔다. "정부가 천재라면!" 모든 재화 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경제의 모든 변화를 매순간 파악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는 냉소였다. 역사는 그의 냉소를 현실로 증명했다. 소련은 수소폭탄은 만들 수 있었지만 빵과 버터는 만들지 못했다.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논지는 사회주의 경제가 장기적으로 존립 불가능하다는 것이지만 관료집단의 무능에 대한 통찰로도 읽을 수 있다. 자본주의 관료집단 역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모든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관료집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공룡부처 재정경제원은 좋은 예다. 재경원은 금융에다 예산, 세제까지 거머쥐었지만 외환위기를 예측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한보철강이 무너지고 기아자동차가 부도나도, 국내에서 달러가 말라가고 외국 채권시장에서 한국채권이 안 팔려도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재경원 관료들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세월호 침몰은 이런 무능과 탐욕이 합작해낸 참극(慘劇)이다. 이런 참극은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희망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든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튀긴 침이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관료집단에서는 개혁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개혁 대상인 안전행정부가 정부를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연출해놓고도 제 밥그릇은 놓지 못하겠다는 관료들의 저항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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