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구급출동! 구조'구급출동! 위치는 중구 ○○동 ○○번지 ○○빌라 5층 추락환자 발생! ○○구조대 및 ○○구급대 신속히 구조'구급출동하세요!"
출동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느낌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선배와 나는 구조대와 함께 신속히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가면서 환자 상태를 파악하려고 신고자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환자의 남자친구라고 말한 이 신고자는 "○○빌라 5층 집에 도착해보니 여자친구가 보이지 않고 창문이 열려 있어서 밖을 내다보니 여자친구가 5층에서 추락해 옆집 기와지붕 위에 있더라"고 했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여 출동 나가는 선배와 나는 구급장비를 꼼꼼히 챙겼다.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다행히 4분 남짓이었다. 현장은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는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 안 빌라였다. 구조대와 현장에 도착해 각종 응급처치 장비를 챙기고 현장으로 진입했다. 빌라와 옆집 기와지붕 사이는 10㎝ 정도였고, 남자친구가 빌라 앞에 서 있었다. 기와지붕 위에서는 여자의 신음소리와 고성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구조대에서 사다리를 설치하자 나는 다른 구조대원과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기와지붕 위에서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고통과 신음, 고성을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환자 바로 옆에는 기와지붕이 1m 정도 뻥 뚫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자칫 잘못하면 구조 도중에 추락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기와가 부서질까 봐 조심조심 환자에게 접근하는 순간 갑자기 엎드려 있던 여자 환자가 데구루루 굴렀다. 그런데 환자가 구멍이 뚫려 있는 기와 사이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와 같이 올라간 구조대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날려 환자를 붙잡았다. 환자가 자칫 잘못하면 뚫려 있는 구멍으로 추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환자를 붙잡고 지붕 위에서 환자 상태를 파악하려는데 갑자기 환자가 내 손을 뿌리치더니 심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119구급대원과 구조대원이라고 여러 번 설명했지만 환자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만취상태였다. 환자를 바로 눕히고 보니 입에서는 술냄새가 심하게 풍겨왔고, 안면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부어 있었다. 또한 코뼈를 다쳤는지 양쪽 콧구멍에서는 출혈이 심했고, 하얀색 상의는 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혹시 모를 다른 외상이 있는지 파악하려는 찰나 환자가 갑자기 또 양팔을 휘저으며 욕설과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스치듯 보이는 피에 젖은 팔꿈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처를 자세히 보니 팔꿈치 쪽에 뼈가 드러나 있었고 10㎝ 정도의 깊은 열상이 있었다. 나는 구조대원에게 환자의 팔을 붙잡아 달라고 한 뒤 상처 세척 및 소독을 하고 붕대로 지혈을 시작했다. 부목으로 팔을 고정하고 나서야 환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환자의 손상 부위를 세척하고 소독하고 부목으로 고정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환자를 지붕에서 지상으로 내리려 구조대 팀장님이 산악형 들것을 지붕위로 올려주시고 구조대원과 나는 환자를 조심조심 들것에 옮기고 전신을 고정한 후 지붕 끝자락으로 향했다. 지붕에서 내리는 환자를 지상에 있는 구조대원과 선배가 인계받아 바닥에 내리자 긴장했던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금 지상에서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데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나와 구조대원들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남자친구에게 환자의 손상부위와 응급처치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의료진에게 환자인계를 하고 나서 돌아오는 내내 그 환자가 걱정이 됐다. 며칠 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환자의 안부를 물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으니 환자는 그날 지인들과 꽤나 많은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 술을 깨려고 바람을 쐰다며 발코니에 걸터앉았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빌라 옆 기와지붕으로 떨어진 것이다. 5층에서 떨어졌는데 환자 상태가 그나마 괜찮았던 것도 어찌 보면 술 때문이었다. 술이 환자의 상황 판단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못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근육이 긴장하지 않아 떨어질 때 충격을 흡수해냈다. 기와지붕에 떨어진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기왓장이 깨지면서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환자는 코뼈 수술과 팔꿈치 수술을 하고 다행히 현재는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환자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좋지만 많이 마시면 이런 식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출동이었다.
윤성훈 대구중부소방서 119구조대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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