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힘이 미치지 못하면 죽을 뿐이지요. 가사에 대해서는 이미 유서를 족질에게 부탁했으니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보호조약을 들고 나왔을 때 외부대신으로 주무대신이었던 박제순은 이렇게 반대의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박제순의 이 비장한 맹세는 지켜지지 않았다. 일본군을 동원하여 각료들을 감금한 이토가 한 사람씩 위협해 나가자 박제순은 "나는 모르겠소, 마음대로 하시오"라며 회피해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이토는 "조약 체결 책임자인 외부대신이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 이는 찬성한다는 뜻"이라며 밀어붙였다.
을사늑약은 결국 1905년 11월 17일에 박제순과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사이에 체결되었고 이 공로로 박제순은 참정대신이 되었다. 이후 박제순은 본격적인 친일의 길로 들어서 경술국치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합방' 후 일제의 자작 칭호를 받은 데 이어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경학원 대제학이 되었다. 일제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여 우리 민족의 분노를 한몸에 받았으나 개인적으로는 부유함을 누리며 살다가, 1916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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