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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꽃] 꽃 파는 사람,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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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객은 꽃이름 대며 깔끔한 포장 원하죠"

꽃을 파는 일은 낭만적이다. 그래서일까. '꽃집 아가씨'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꽃이 좋아 꽃을 공부하고, 이제는 다양한 꽃 디자인을 개발해 대중에게 판매하는 대구의 젊은 플로리스트들이 지역의 꽃 소비문화를 바꾸고 있다. 20, 30대 플로리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꽃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꽃집은 정원의 축소판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한 아파트단지 구석에는 작은 꽃집이 자리 잡고 있다. 공간은 좁아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풍성한 곳이다. '프롬더가든'의 대표인 30대 플로리스트 이영주 씨는 꽃이 좋아서 지금껏 한 우물만 판 '꽃 예찬론자'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공부한 뒤 서울의 유명 플라워숍인 소호앤노호에서 2년간 실력을 쌓았고, 영국의 대표 플라워숍인 재인패커의 서울 영업장에서도 근무했다. 이 씨는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화훼디자인과가 많이 없어서 대안으로 조경을 공부했다. 서울의 플라워숍에서 일하다가 대구에도 이런 꽃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2007년 대구에 와 문을 열었다. 이곳은 나만의 작은 정원인 셈"이라며 웃었다.

이 씨의 꽃에는 영국 감성이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집을 연 뒤 2009년부터 5년간 매년 여름 영국을 찾았다. 이 씨만의 꽃 여행이다. 180년 전통의 영국 '첼시플라워쇼'를 찾기도 하고,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꽃집에 들어가 꽃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에는 1~2개월 과정의 단기 플라워 레슨이 많아서 6월부터 여유가 있으면 잠깐 가게 문을 닫고 영국에 가 수업을 듣고 온다. 인터넷으로 사진만 보고 꽃 디자인을 흉내 낼 수도 있지만 직접 가서 영국의 분위기와 감성을 느끼며 꽃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프롬더가든을 운영한 지 8년째, 이 씨는 조금씩 고객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고객들의 '꽃 취향'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고객들은 리시안셔스, 붉은색 카라처럼 원하는 꽃 종류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포장도 무조건 푸짐해 보이는 것보다 꽃이 돋보이는 단순하고 깔끔한 포장을 선호한다. 이 씨는 "요즘 고객들이 원하는 꽃을 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됐다. 신부 수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플라워 레슨에 참여하는 젊은 여성들도 많다"며 "앞으로 더 많은 분이 꽃을 편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꽃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했으면

지난해 7월 경북대 정문 근처 밥집과 치킨집 틈바구니에 꽃집 '메이엔'(May N)이 문을 열었다. 이곳의 주인장은 이수진(28) 씨. 이 씨는 "죽기 전에 꼭 꽃집을 열어야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일찍 왔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이 씨는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꽃과 인연을 맺은 경우다.

그는 스스로 "소심하다"고 표현했지만 이 씨는 2년 넘게 안정적인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사직서를 내고, 꽃집을 차린 당찬 여성이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다양하다. 여자친구에게 줄 꽃 한두 송이를 찾는 남자 대학생들부터 SNS로 검색해 꽃을 주문하는 직장인들, 꽃이 좋아 꽃꽂이를 배우는 젊은 여성들까지 모두 메이엔의 고객이다. 이 씨는 그중에서도 "꽃집 문을 연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 남성 고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남성은 "예비 장모님께 드릴 꽃"이라며 15만원짜리 꽃바구니를 주문했다. 이 씨는 "이 돈이면 대형 화환을 살 수 있는데 갓 꽃집 문을 연 나를 믿고 주문해 주시니 감사하고, 또 긴장됐다. 많이 긴장해서 내가 100% 만족하는 꽃바구니를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무척 좋아하셔서 행복했다"며 당시 만든 꽃바구니 사진을 보여줬다. 꽃바구니 덕분인지 그 남성 고객은 결혼에 성공했고, 올해 7월에도 장모님 꽃바구니를 주문했다.

메이엔의 꽃은 튀지 않는다. 꽃집 안 냉장고 안에 흰색과 녹색, 파스텔 톤의 수수한 꽃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씨는 네덜란드의 꽃 디자인을 좋아한다. 대학교 2학년 때 네덜란드에서 정부가 공인하는 꽃꽂이 자격증을 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는 꽃이 화려한 편이고, 네덜란드는 꽃에 녹색을 최대한 많이 섞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 것 같다. 우리 꽃집을 찾는 고객들도 나와 취향이 통하는 분들이 많다"며 말했다.

이 씨는 꿈이 많다. 첫 번째 꿈은 원예 치료를 공부하는 것이다. "대학 주변에 꽃집을 차린 것도 학교에 가까이 있어야 공부를 할 것 같아서"라며 웃었다.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꽃을 들고 자주 찾아갔다. 그때 주변 할머니들도 꽃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앞으로 자신이 꽃이 마음을 치유하는 데 사용되길 원한다.

이제 갓 돌을 지난 메이엔의 주인장은 고민이 없을까. "고민은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해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이 고민이 싫지 않아요." 이 씨의 고민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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