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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의 시와함께] 여름 나무의 추억-채호기 (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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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햇빛으로 들끓는 텅 빈 정적 속에서 모가지를 꺾고 툭툭 떨어지는 붉은 꽃들은 결코 네 피가 아니다, 네 얼굴이 아니다. 한여름 잎들의 샤워꼭지에서 짙은 그림자를 쏟아 붓는 진초록 그늘이 한결 너답다. 머리카락 그림자를 깊게 빨아들인 너의 얼굴, 검푸른 수면에 무지갯빛 반짝이는 기름을 띄운 듯 너의 얼굴에 햇빛 조각들이 가볍게 떠돈다. (……) 온갖 날벌레들의 날개 소리만이 귓속에 가득해서 거기 너로부터 아득히 먼 곳으로 나는 허공을 날갯짓도 없이 날아왔다. 저기 저 아래 바다 위에 촘촘히 떠 있는 섬들은 내가 네 밑에 물결처럼 드러누웠을 때 덮은 출렁이는 너의 진초록 잎들 같다. 올려다본 하늘 바다에 별이 된 너의 섬들, 섬으로 떠 있는 너의 잎들. 네게서 멀리 떠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나는 열매처럼 너의 이름을 입 안에 넣어본다. 너의 맛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 여름 나는 결코 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어낼 수가 없겠구나. 안녕, 나의 진초록들이여.

(부분, 『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 지성사, 2009)

시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 여름의 붉은빛과 푸른빛은 온통 사랑하는 이의 의미여서 나는 날갯짓도 없이 허공을 날아와 사랑하는 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하늘의 초록 섬들과 바다의 별들을 상상하며 달콤한 열매 같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입 안에 넣고 굴려보는 중이다. 물론 시의 문맥은 여름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드러누워 바라보았던 진초록의 이파리들과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일까. 지금, 여름이 절정이다. 이 여름의 아름드리나무 진초록 그늘 아래에 누워 이 시를 흥얼흥얼 읽어보시라.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없는, 동글동글하고 달콤한 누군가의 이름이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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