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은 판결 선고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판사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싶어 할까?
대표적인 선호 직업이자 소수 직업인 판사들에 대한 궁금증이 적잖지만 직업 특성상 드러내는 것을 꺼려 베일에 싸여 있다. 선고할 때 기분이 어떤지, 판사들은 원래 점잖은지, 점잔을 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친척이나 친한 친구 등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판사들의 속마음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직업 특성상 활동 영역을 스스로 좁히다보니 일상 속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고, 만난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얘기를 잘 털어놓지도 않는다.
일상이 그럴진대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칼'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얘기하다가도 자신의 재판이나 업무와 관련된다 싶으면 경직되고 냉정해진다.
중고참 판사인 조순표·조은경 판사를 통해 판사들의 생활과속내, 애환 등을 소개한다.
▶ 판결 선고할 때 솔직히 어떤 기분이 드나.
▷ 조은경 판사=형사든 민사든, 무죄든 유죄든 모든 판결 선고 땐 긴장되고 부담된다. 처음부터 결론 예측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도 선고 순간은 마음 편하지 않다. 특히 형사사건의 경우 '진실'을 밝혀야 하고 일단 구속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기준, 증거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민사사건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 조순표 판사=동료 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형선고를 해야 할 땐 전날 잠을 자지 못하고, 선고 후엔 술을 마시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사건은 '나한테 배정 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리적 부담이 크다. 형사사건 유죄 선고할 때는 긴장되지만 판사로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는 법관도 있다.
▶ 선고하고 나면 시원한가 아니면 아쉽거나 찜찜한가.자신 없는 경우도 있나.
▷ 조은경= 전부 맞다. 일단 짐을 내려놓게 돼 시원하지만 간혹 자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기록을 보고 증거들을 토대로 결론을 내렸지만 실제 진실과는 다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 조순표=고민을 많이 한 사건일수록 선고하고 나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시원하다. 시간에 쫓겨 선고한 사건 경우엔 찜찜하기도 하고, 자신이 없는 경우도 있다. 무죄를 선고할 땐 피고인이 기뻐할 것으로 예상하고 약간 반가운 목소리로 선고하는데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속으로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법관도 있다.
▶ 법관 입장에서 원고나 피고, 피고인 등이 재판받을 때도움될 만한 팁을 준다면.
▷ 조은경=뭐든지 근거를 남겨놓는 게 중요하다. 돈거래의 경우 계좌를 통해서 하고 계약서, 영수증 등을 남겨 놓는 것이 좋다.
자료를 많이 낸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자료를 내야한다. 더 중요한 건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걸 아는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렸다가 형사사건의 피고인, 피해자로, 민사사건의 원고, 피고로 법정에 나오는 분이 정말 많다.
▷ 조순표=법관은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심판이다. 증거를 구체적으로 내지도 않고 '법원에서 다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엔 법관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형사사건의 경우 자백한 피고인이 법정에서 성실함을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 평소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떤가. 법관이라는 것을의식하고 언행에 신경을 쓰거나 조심하나.
▷ 조순표=일반인들은 법관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할 때조심한다. 스스로 방어막을 칠 수밖에 없다.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데 혹시나 부탁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어떡하나 지레 겁먹고 스스로 벽을 쌓는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친해지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겁을 내 미리 차단하기도 한다.
대인 관계에 적극적이지 못한 법관이 상당수다. 법관끼리만 친하거나 외로운 법관이 많다. 밖에서 법관 모임을 할 때도 '회사'라고 표현하고, 호칭도 '판사'가 아닌 '프로'로 한다.
▷ 조은경=직업이 알려지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언행에 조심하지 않으면 나를 보고 법관 전체를 판단·평가하거나 일반화할 수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모를 땐 편하게 체육복 입고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놀았는데 알려진 뒤에는 신기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눈길이 느껴져 불편해졌다.
▶ 법관 간에도 세대차이가 있나. 판결의 추세나 재판 진행 또는 법원 조직 생활 등에서 달라진 게 있나.
▷ 조은경=예전에는 회식 등이 공적 생활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재판 외 업무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회식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다양화됐다. 이는 여성 법관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차이기도 한 것 같다.
'가족만 잘 부양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표현에 서툴렀던 예전의 아버지들처럼 과거 법관도 '판결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설명을 하거나 얘기를 들어주는 데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도 많이 하고 얘기도 많이 들어주는 법관이 많아졌다.
▷ 조순표=예전에는 합의부의 경우 배석판사들이 부장판사로부터 모든 것을 배우는 소위 '도제식 교육'의 성격이 강해 지금보다 선후배 사이가 더 엄격했던 것 같다. 또 과거엔 합의부의경우 재판이 끝나면 부장판사와 배석판사가 같이 목욕 갔다가 술 한잔 하는 걸 일의 연장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법관 세계도 다른 업종의 조직처럼 위계질서가 엄격한가. 사건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나. 법원장이든 신임 법관이든'법관은 모두 평등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 조은경=재판 업무에 있어서는 평등하다. 각 법관이 맡은 사건의 구체적인 재판 진행이나 결론에 대해선 누구의 영향이나 간섭도 받지 않는다.
물론 고민스러운 사건에 대해선 다른 선후배 법관의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선배 법관이나 법원장이라고 하더라도 사건에 개입하거나 지시하는 등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 조순표=선후배 관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조직문화가 좀 덜한게 사실이다. 특히 재판 업무에 있어선 각 법관의 독립성을 철저하게 존중한다. '내 이름을 걸고 재판을 진행하고, 결론 내고,책임까지 지는 내 사건'이라는 독립성이 강하다.
또 법원장이라 하더라도 협조 차원이지 지시하지는 않는다. 친분이나 선후배 관계여도 부탁을 하는 경우가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법관직을 걸어야' 들어줄 수 있다.
▶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되나.
▷ 조순표=일주일에 두 번만 야근하는 법관이 제일 부럽다는 말이 있다. 칼퇴근하는 법관은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야근하면 보통 밤 9, 10시를 넘긴다. 야근이 많다 보니 부속실 직원도 "야근수당 많이 받으시겠어요"하며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법관에겐 시간외 수당이 없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법관이 많다.
▶ 하루 일과는.
▷ 조순표 일주일에 재판 한두 번 하고 나머지 날엔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재판 있는 날에는 온종일 말하다 보면 목이 많이 쉬고, 체력이 고갈된다. 이 때문에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체력'이라는 법관도 많다.
▷ 조은경=재판 없는 날엔 기록 검토, 자료 수집, 재판 관련 논문 저술, 판결문 작성 등 재판 준비를 하느라 재판 있는 날보다 더 바쁘다. 주로 야근하는 날은 재판이 없는 날이다.
▶법원 내 생활이 재미없지는 않나.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재판기록 보고 연구하거나, 재판 있는 날에는 종일 법정 앉아 있어야 하는데.
▷ 조순표=법원 생활을 보통 '절'에 비유한다. 조용하고 자기 일만 혼자서 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 혼자 일하고, 또 청탁 등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직업 특성상 법관들이 대인 관계를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얘기가 있다.
▷ 조은경=법관도 개인별로 개성이 다르지만 보통 인간관계를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재판 업무를 잘하는 것과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집단성'도 한 이유인 것 같다.
같이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친한 친구나 동기들 경우 대인관계나 성격이 비슷했는데 검찰로 간 친구는 다소 적극적이고 사교적으로 변하고, 법원으로 간 친구는 원래 성격을 유지하거나, 관계가 차단되거나 조심스러워진 경우가 많다.
▷ 조순표=대인관계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대인관계의 필요성에 비해 위험성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선후배가 오늘의 사건 당사자의 대리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법관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법원에 와서 소극적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법관이라는 직업은 겉으로는 명예로운 것 같지만 외롭고 힘든 직업인 것 같다.
※프로필
조순표 판사=능인고, 서울대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조은경 판사=숙명여고, 서울대사법시험 46회, 사법연수원 3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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