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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검도 인생…취미로 시작해 지도자 변신 조요왕 관장

드라마에서 처음 본 '검' 그 검이 이제 삶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이제 재능 기부 형태로 되돌려 줘야죠." 수성구 상동에서 도장을 열고 후진, 후배 지도에 나선 조요왕 관장이 수련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 촬영 협조: 홍도스튜디오

한순간에 생(生)과 사(死)가 갈리는 찰나적 게임의 결정판이라는 검도. 칼끝에서 벌어지는 초스피드 승부가 매력적인 운동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광속(光速) 게임에 매료돼 20년째 죽도를 휘두르고 있는 검객이 있다. 1995년 SBS드라마 '모래시계' 백재희(이정재 분)의 현란한 칼사위는 한 청년을 매료시켰다. 그 후 그에게 죽도는 세상과 통하는 창구이자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지침이 되었다. 칼을 잡은 지 강산이 두 번쯤 바뀌었고 그 사이 공인 5단의 중견 무도인이 되었다. 이제 그는 후진 양성을 위해 '훈육의 칼'을 잡았다. 수련생에서 사범으로 칼을 고쳐 잡은 것이다. 수성구 상동에 도장을 열고 후배 지도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조요왕(49) 관장을 만나봤다.

◆검도에 빠져들다 '모래시계의 칼'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윤혜린(고현정 분)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죽도를 들고 나타나 주인공을 구출하던 '비운의 보디가드' 이정재는 당시 하나의 문화코드였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 검도관마다 수련생이 줄을 잇고 죽도 공장들은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야 했다. 이때 20대 후반의 조 관장도 시청률 50.8%의 대열에 합류하며 백재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평생 즐길 운동을 하나 찾고 있었어요. 그때 모래시계가 운명처럼 다가온 겁니다. 검도 하나만 잘 익혀 놓으면 내 몸 하나 지키고 평생 정신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바로 도장을 찾았어요."

처음 호구(護具)를 착용했을 때 현실은 드라마하고 딴판이었다. 5㎏이 넘는 장비를 차고 나니 몸과 장비가 따로 놀고 스텝은 엇박자로 꼬여갔다.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고 운동을 해온 덕에 2001년 드디어 초단을 땄다. 그간 진해, 마산, 창원을 거쳐 대구로 이사를 다녔지만 한 번도 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조 관장의 검에 큰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지역 검도의 대부 김정국 관장과의 조우였다. 이 만남 이후 개인 수련, 취미에 머물던 조 관장의 칼은 비로소 세상을 향해 바람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 검은 김 관장을 만나기 전후의 '비포 & 애프터'가 분명합니다. 관장님 지도 후 각종 대회에서 입상했고 기교면에서도 큰 발전을 했습니다. 어설픈 칼잡이를 무도인으로 이끌어 주신 거죠."

◆각종 대회서 두각 '세상으로 나온 칼'

김 관장의 손에 이끌려 도장 문밖으로 나왔지만 세상의 검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0년 무렵 조 관장은 각종 대회에서 단 한 번도 8강 근처에 가지 못했다. '아! 내 검도는 수신(修身)용이구나' 하고 검을 내려놓으려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던 2005년 그해에 매일신문 사장기 검도대회가 열렸다.

"정말 이 대회에서 4강 안에 못 들면 검도를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저보다 늦게 시작한 후배들도 4강, 8강에 오르는데 체면이 안 서서 도저히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가 통했던 걸까. 승리의 여신은 놀랍게도 반전 드라마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대구시 전 동호인, 선수들이 맞붙은 단별(段別, 2단)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특히 단별대회는 사회인 클럽은 물론 엘리트 선수까지 망라한 경기여서 보람은 더 컸다.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자 김정국 관장은 그를 단체전에서 주장이나 선봉(先鋒)으로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날개를 편 조 관장의 실력은 2006년 대구시장기 단체전 우승, 2009년 생체협 검도 개인전 우승, 2010년 대구시장기 개인전 우승, 2013년 사회인 검도 단체전 우승, 2015년 국무총리 시도대항검도 단체전 3위로 결실을 이어갔다.

◆각종 단체 사범 초청 '가르치는 칼'

조 관장의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김 관장은 후진 지도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조 관장은 승단을 거듭해 5단이라는 중견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작년 김정국 관장과 조 관장은 미국 조지아주 검도협회(GKA)의 초청을 받아 10일 동안 애틀랜타를 다녀왔다. 김 관장에게 객원사범으로 현지 지도를 요청한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의, 특히 대구의 검도를 해외에 알릴 수 있어서 정말 보람이 있었습니다. 죽도가 메신저가 되어 해외 교류의 장을 열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도 깨달을 수 있었죠."

지도자 길로 접어들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일은 작년 '전국학교 스포츠클럽 검도대회'였다. 조 관장은 지인의 권유로 대구 동곡초등학교의 검도부를 맡았는데 이 아이들이 전국대회에서 일을 낸 것이다. 전국 클럽팀이 참가한 경연대회에서 동곡초는 초등남자부에서 우승을, 여자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여자부는 모두 2학년으로 구성돼 각계의 놀라움은 더했다. 학생, 단체지도에 자신감이 붙자 조 관장은 아예 사범자격(대한검도회)을 취득했고 얼마 전엔 생활체육지도사 자격도 땄다.

◆도장 열고 후진 양성 '나눔의 칼'

검객들의 칼은 진화를 거듭한다. 수련에 내공이 쌓일수록 검은 발전하고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조 관장의 최근 화두는 '삼살법'(三殺法)이다. 삼살법이란 상대의 칼을 죽이고 기술을 죽이고 기(氣)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칼과 기(技)를 죽인다는 것은 상대의 검선과 동작, 시간을 제압하는 것을 말하고 기를 죽인다는 것은 상대의 기를 압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테크닉 위주 포인트 위주 검법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동안 이기는 검법, 점수 위주 검법만 구사했어요. 그 덕에 어느 정도 승수도 쌓고 명예도 얻었지만 어느 순간 칼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어요."

어느덧 지역 검계 고수의 반열에 오르면서 그의 검술도 어느 정도 명성을 쌓았다. 이제 조 관장은 그동안 쌓은 기와 예를 지역 사회의 후배, 후진들과 나누려는 일을 시작했다. 최근 조 관장은 수성구 상동에 검도관을 열었다. 막 지도자 생활에 접어든 조 관장의 첫 번째 일성(一聲)은 '나눔의 칼'이었다. 현재 조 관장은 동대구노숙인센터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고 앞으로 장애인 복지 등 사회사업에도 적극 나설 생각이다. 조 관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후진 양성에도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형편상 검도를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검도를 지도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입은 음덕을 '재능 기부' 형태로 돌려줄 생각입니다.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진학, 진로까지 책임질 생각입니다." 조 관장의 경쾌한 죽도 파열음이 도장 안팎으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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