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얍삽·꼬롬·비열·간사한 인간

'인간은 원래 악(惡)할까? 선(善)할까?'

철학자는 아니지만 개똥철학에 한 번 도전해본다. 40년 가까이 초긍정적 사고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믿어왔는데, 최근 몇 년 들어 현실을 보면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는 금전적 이익 또는 평판'명예'승진'보상'로비'우군(내편) 등 속셈(나름의 계산)이 숨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이 얼마나 거짓되고 구렸으면, '이건 진짜다' '솔직히 말해서'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는데' '난 속셈 없다. 순수 그 자체다' 등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 의심스럽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정적 생각을 하게 되면, 믿음'소망'사랑'우정'행복'기쁨'단합'희생'봉사'헌신'책임 등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단어들조차 각자 자신의 이익을 포장하는 데 동원한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런 언어 포장술이 뛰어난 인간들을 보면 역겹기도 하다.

최근 본 영화들은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얼마 전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염석진(이정재 분) 대장이 우리나라 정부와 일본 군정 양쪽에 고급정보들을 팔아가면서 얼마나 얍삽하고 간악한 행동을 했는가. 친일파 재벌 강인국(이경영 분)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부와 명예)을 위해 아내와 쌍둥이 딸까지 죽이는 극악무도함을 보여줬다. '인간이 이럴 수 있나'라는 자괴감마저 들었지만, 친일파 후손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큰 부를 누리고 있는 걸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신나게 보고 있는 권력과 배신의 시리즈물 '왕좌의 게임'도 성악설에 대한 믿음을 줬다. 왕의 대수 에다드 스타크(애칭 네드)가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의 딸 산사 스타크는 포악한 왕 조프리 바리테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가 반역죄를 인정하도록 종용한다. 결국 에다드 스타크는 자신의 딸과 온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효수된다. 미국 HBO 엔터테인먼트의 이 시리즈물은 부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속성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추악하고, 게걸스러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5년 대한민국의 민낯을 들여다보자. 누가 감히 '세상은 순백이고, 인간은 착하고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변 사람들의 '꼬롬'하고 얍삽하고 거짓된 말과 행동이 더 잦아졌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나 역시 특정 상황에서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고, 간사한 행동을 일삼는다. '뭘까? 이 더러운 기분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2번이나 읽어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판을 보면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를 못 내리겠다. 그래도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성선설이 다시 깨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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