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은퇴하신 원로분이 지나가면서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집 앞에 쌓인 낙엽을 보았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줄은 전에는 몰랐습니다. 저도 그렇게 아름다운 낙엽과 같은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은퇴하시면서 남은 생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필자도 그런 경험을 했다. 물이 없어 헐떡이던 대지 위에 밤새 느끼지도 못할 만큼 밤새 살포시 가을비가 내렸다. 아침 시간 촉촉해진 대지의 향기와 촉감을 느끼며 출근하는 길이었다. 교회 뒤편 외로이 서 있는 큰 은행나무가 나를 반긴다. 생각지 못한 풍경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밤새 은밀하게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이 떨어지고 비의 영향으로 많은 은행잎이 떨어져 있었다. 겹겹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겹겹이 쌓여 지면이 온통 과할 정도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떨어진 낙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나도 모르게 '곱다, 곱다, 곱다'를 연발했다. 낙엽이 이렇게 멋지게 다가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일까? 스르르 바람 박자에 맞추어 몇 장의 나뭇잎이 내 앞에 또 떨어진다. 더 아름답다.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몸을 바람에 맡겨 마치 자유 낙하를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미 포개질 만큼 포개진 낙엽 사이로 내려와 누구인지도 모르게 앉아버린다.
언젠가 책에서 나뭇잎이 가을에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다. 낙엽이 되는 이유는 바로 가을과 겨울 사이의 추위와 수분 때문이다. 겨울에는 수분 공급이 안 되기 때문에 잎이 떨어져야 광합성도 덜하게 되고 나무줄기는 살 수 있는 것이다. 참 자연은 우리에게 알면 알수록 신비하게 다가온다. 또한 우리네 인생살이와도 많이 닮아 있다.
최근에 서울 종로구에서는 가로수에서 발생하는 낙엽을 친환경 농장에 퇴비로 재활용하는 낙엽 재활용 사업을 내년 2월까지 추진한다고 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종로구의 낙엽 재활용사업은 5천t의 낙엽을 재활용해 4억7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세금을 절약했다고 한다. 낙엽으로 만든 퇴비를 농지에 살포하면 땅도 건강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그곳에서 나는 농작물을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갑자기 낙엽보다 못한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함께 어우러져 마음껏 그 자태를 뽐내려고 하다가도, 자신보다는 나무를 위해 아낌없이 주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져 떨어지는 모습, 그 가냘프게 흩날리며 때론 너무도 힘없이 자유 낙하하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주고 떨어지는 낙엽…. 나무를 위해 기꺼이 드러내지 않고 포개어 떨어져 나무에게, 사람에게 이로움과 행복을 주는 것이 낙엽이다.
솔직히 낙엽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쓸쓸함, 외로움, 이별, 추위의 시작 등등. 그러나 낙엽만큼 아름다운 스토리를 쓰는 것은 이 가을에 찾기 힘들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가장 가볍게 떨어져 끝까지 아름다움을 주고 가는 인생…. 앞서 언급한 원로 장로님을 보면서 늘 가난하고 힘든 자들의 편에서 일하며, 교회와 신도들의 궂은 일을 챙기는 모습, 건축 등 큰일을 묵묵히 희생하며 지고 가는 모습, 아름답게 나뭇잎처럼 떨어지고 그다음은 어떻게 아름다운 헌신을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귀하고 아름다운 낙엽을 떠올려본다. 낙엽은 낙엽이 되어서도 나중에는 물기가 바짝 말라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밟히며 자신 희생의 소리를 통하여 온갖 즐거움과 추억을 선사하고 장렬히 사라진다. 겨울이 오는 길목인 가을의 끝자락에 만난 낙엽이 갑자기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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