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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만세, 서울말만 국어인감?⑥] 사투리 홀대하면 소멸

사투리도 언어의 한 종류 표준어와 상호 보완 관계 적극적인 활용 권장해야

지난해 열렸던 안동사투리경연대회와 문경사투리경연대회 모습. 매일신문 DB
지난해 열렸던 안동사투리경연대회와 문경사투리경연대회 모습. 매일신문 DB

사투리에 대한 편견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투리는 온전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투리 사용자끼리는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오히려 사투리는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말을 보존하고 있기도 하고, 표준어를 보완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지역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처럼 사투리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면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몇 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사투리를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북대학교 이상규 교수는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하는 등 사투리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사투리 문제는 거시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투리를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지역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사투리 발전'보존 움직임 활발

사투리엔 지역의 문화와 전통,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지역민의 독특한 정서가 배어 있다. 또한 국어 낱말을 폭넓게 하고 삶의 다양성 유지에도 이바지하는 등 순기능이 많다. 지역 유대 강화와 정체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사투리를 보존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를 제정하는 등 경북 토박이말 보존과 발전에 나서고 있다. 또 안동을 비롯해 포항, 문경시는 사투리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안동시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회째 사투리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안동문화원 이재춘 원장은 "안동 사투리에 담긴 정감과 구수함을 보존하고 전하기 위해 매년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에서도 지난해부터 문경사투리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사투리 보전 노력의 선두 주자다. 제주도는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조례'를 제정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가 하면 제주어보전육성위원회와 제주어연구소를 개설'운영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2012년 경남방언연구보존회가 발족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축제에서 사투리 토크쇼'퀴즈대회'시화전을 여는 등 사투리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울산시는 울산방언사전을 펴내 사투리 보존에 나서고 있으며, 강원도에서는 강릉사투리보존회가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사투리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강릉의 여러 극단과 함께 사투리로 된 오페라'연극'인형극 등을 무대에 올려 지역 주민들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또 매년 사투리 경연대회도 열고 있다. 그 내용이 구성지고 재밌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사투리로 엮은 유머집과 영어 회화를 사투리로 풀어 쓴 책자도 발간하고 있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과 전라도닷컴은 2011년부터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열고 있다. 상 이름도 사투리다. 대상은 '질로 존 상', 금상은 '영판 오진 상', 장려상은 '어찌끄나 상'으로 이름을 지어 사투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 다른 지역 사람은 물론 외국인이나 결혼이민여성 등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화합의 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 "사투리는 보존돼야"

학계에서는 사투리는 다름에서 출발해야 하고 표준어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경북대 김덕호 교수는 "서울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지방 인구의 수도권 이동 등으로 점점 도태될 위기에 처했던 사투리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며 "방송 드라마나 개그, 영화 등 친숙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지역의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 물론 사투리 보존'계승을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성우 인하대 교수는 '방언, 이 땅의 모든 말'이란 책에서 사투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언어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의 언어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어에 수많은 사투리가 있다는 것은 한국어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며 "사투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한국어가 있어야 하고, 한국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실체적 언어인 사투리가 있어야 한다. 결국 둘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사투리와 표준어는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투리가 있어야 표준어가 필요하고, 사투리가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표준어를 제정할 수 있다"며 "모든 사투리를 표준어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땅의 모든 말인 사투리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표준어로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상황이 한국어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키워드는 언어다. 사투리도 언어의 한 종류다. 특히 사투리는 단순한 지역 언어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체계다. 사투리가 사라지면 지역 문화도 사라진다"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사투리에 대한 국가 정책은 국어학자 입장에서 접근하면 답이 안 나온다. 국민들이 사투리를 쉽게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어학자들 "국리방언연구원 설립 필요"

우리나라는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표준어 기준을 삼았다. 1989년부터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기준을 바꿨다. 아직까지 '표준어는 국어, 표준어는 서울말'이란 서울말 중심의 정책이 그대로다. 학계에서는 서울말 중심 표준어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사투리를 보존'발전시켜 국어 발전을 꾀할 때라고 말한다. 그 방법으로 '국립방언연구원' 설립을 제안했다.

현재 국립국어연구원은 2004년부터 국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지역어 조사 사업'을 추진, 매년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해 연구하고 있다. 지역 대학과 함께 '전국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각 지역의 사투리를 상품화하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사투리는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인데 소멸 속도가 빨라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국립방언연구원을 별도로 설립해 연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방언의 보존과 계승 발전을 위한 국립방언연구원 설립을 모색하는 학술회의가 지난해 경북대에서 열렸다. '한국어, 다양성과 통일성의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국립방언연구원 설립의 필요성과 목표, 독일'프랑스 등 외국의 어문정책과 방언정책의 실례 분석, 연구원 설립의 법률적 검토 등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학술회의에 참여한 경남대 김정대 교수는 "사투리는 국어 어휘를 다양하게 하고 국어사 연구에 크게 이바지한다"며 "현재 방언이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어 방언연구원을 만들어 방언과 관련되는 문제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사투리의 소멸 속도가 너무 빨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현재 국립국어연구원의 인력으로는 안 되고 별도로 방언연구원을 설립해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사람들은 글보다 말을 먼저 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글 중심으로 연구했지만 앞으로는 말 중심의 연구로 가야 한다"며 "문어 중심에서 구어 중심으로 연구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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