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여 명만 모여 있으면 달려가…'구의원' 별명 들었죠"

김부겸이 바꾼 대구 선거문화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대구 분위기를 제대로 바꾼 겁니다."

지난 4년간 차근차근 바닥 민심을 닦은 김부겸 국회의원 당선자는 10여 명만 모여 있으면 어김없이 달려가 '구의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신선한 시도를 많이 했다. 주민이 축사하는 개소식, 공약을 쏙 뺀 편지글 형식의 후보자 홍보물, 동네별 맞춤 공약을 내건 것이 그 예다. 소속 정당의 후광 없이 자기 이름 석 자로 승부를 봐야 했던 그는 수성갑을 향한 진정성을 아이디어로 담아냈고, 결과적으로 압승했다.

1천500명이 넘게 몰려온 선거사무소 개소식은 파격 그 자체였다. 김 당선자는 현직 국회의원 등 '높은 사람' 의전에 집착하지 않고 철저하게 주민 중심으로 진행했다. 개소식에 참석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 유명 인사들은 자리도 없이 주민 사이에 뒤섞여 있었다. 대신 수성갑에 사는 20~70대 주민이 축사를 맡았고, 조기축구회장, 목욕탕 사장 등 참석자 이름을 다 부르는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이후 "주민들이 대접받는 개소식이었다"는 평가가 나왔고, 다른 지역구 새누리당 후보들이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편지글 형식의 예비후보자 홍보물도 신선했다.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기존 슬로건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 아들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공약만 열거한 정치 홍보물과 달리 부모의 고민과 대구 사람 김부겸이 돼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적어 40, 50대 아버지 유권자에게 호소했다. 홍보물에 공약을 뺀 이유에 대해 김부겸 당선자 측은 "공약이 메시지라면 후보는 메신저다. 메신저를 신뢰하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공약은 동네별로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수성구민운동장 개방 시간 연장' '만촌역 수성대 방면 출구 신설'처럼 맞춤형 약속을 했고,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와 공약 경쟁을 하며 수성갑이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정책'공약 선거의 모델로 떠올랐다.

김 당선자 측이 승리를 감지한 것은 지난달 31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나서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를 앞서갈 때 김부겸 캠프 측은 "여기는 대구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유세 현장에 나가니 신문에서 지지율 숫자로만 노출됐던 민심이 눈에 보였다는 것이다. 유세 모습을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은 물론 젊은 사람들이 몰려와 '셀카 촬영 요청'을 하는 바람에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누렸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은 김부겸의 등장을 계기로 유권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거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대구는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니 주민을 무시하고, 허리를 굽히지 않는 정치인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야당 소속인 김부겸을 '우리 사람'으로 인식하고 몰표를 준 것은 주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정치인의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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