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신청 위해 대기 중인 외국인들
잠잘 공간 따로 없는 인천공항에 노숙
70만 동포 포함 150만 외국인 품은 한국
따뜻하게 대하는 만큼 우리도 대접 받아
닭똥 같은 눈물을 보았는가? 그것도 꼬장꼬장 마르신 노인의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큰 방울을 말이다.
1990년대 초반 모스크바에서였다. 한국 대사관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그만 아파트 2채를 빌려 모두 웅크리고 근무할 때다. 상당히 추운 날로 기억되는데, 한 연만하신 고려인 동포께서 두루마기 깨끗이 차려입고 찾아오셨다. 당시가 엄정한 소련시대였고 모스크바 한복판이었으니 두루마기 차림이란 정말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밤새 기차 타고 올라오는 길이라며,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장장 반세기나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고려인 동포들은 주로 함경도 사람들인데, 본인 일가(一家)는 남쪽 한밭(대전) 사람이라고 했고, 대한민국 대사관이 열리는 순간, 고국으로 귀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모진 사회적 차별과 멸시까지 마다않고 무국적자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자식들은 일찌감치 소련 국적을 취득했다고도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너무나 당당하게, 너무나 희망차게, 한 점 의심 없이 조국 대한민국에 안기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었다.
사실, 대사관이 모스크바에 주재하면서 바로 불거졌던 민원사항이 적잖은 동포들, 특히 우리 호적에 남아 있지 않은 동포들의 국적회복 불능이란 문제였다.
이 동포분께도 대한민국 국적법으로는 당장 돌아갈 수 없고, 관련법이 개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핏줄로는 동포이나 법적으론 무국적자 외국인이라 안 되며, 죄송하다고, 이해해 달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말이 길어지는 필자로서도 법적으로야 말이 되지만 심정적으론 도대체 와 닿지 않는 소리라 싶어 구차함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당연히 동포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구먼, 내가, 조선 사람이 조선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데 안 된다니, 당최 뭔 소리를 하는 게냐!"며 버럭버럭 역정을 내셨고, 끝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한 주일 잊고 있었는데, 이분이 다시 찾아오셨다. 집안의 족보는 유랑의 세월 동안 챙길 수 없었던지 가첩(家牒)이란 걸 가지고 오셨다. 아무래도 대사관에서 조선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혹여 만주나 중국이나 몽골 사람으로 의심하며 귀향을 거부하는 건가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첩 여기저기를 적시하며, 고조, 증조 할배가 누구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누누이 설명했다. 이래도 못 믿겠느냐, 왜 이리 답답하냐, 그러고는 마침내 넋 놓고 울기 시작했다. 기다린 세월이 얼만데, 고향 땅에 묻혀야 하는데, 어이 안 된다는 거냐? 이게 오매불망 기다렸던 조국이란 말인가! 두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런 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안타까운 경우들을 얘기할 때면, 특히 이분 생각을 많이 했다. 조국에 대한 서운한 마음에서 뒤늦게 소련 국적을 취득했을까, 못내 울분과 시름 속에서 화병(火病)까지 얻지는 않았을까, 한숨들을 쉬곤 했다.
일전 언론에서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는 난민 신청 등의 이유로 몇 개월째 대기하는 외국인들이 있다고 했다. 대기실에는 창문도 없고, 샤워실, 화장실은 있지만, 세탁시설이나 잠잘 공간은 따로 없다고 하고, 한 장의 담요와 햄버거'콜라만 삼시 세 끼 제공한다고 했다. 우리 사람이 타국 공항 대기실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우리 마음은 또 어떨까.
어느덧 대한민국은 70만 가까운 동포를 포함하여 약 150만 외국인을 품고 산다. 주변에는 다문화가정도 흔하다. 우리도 이산(離散)의 아픔을 절실히 겪은 민족일 뿐 아니라, 한 치만 더 생각해도 우리 사람이 더 많이 해외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동포나 외국인에게 더 따뜻해지는 만큼이나, 우리 사람도 타국에서 더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공부나 일로 나가 있는 우리의 장한 아들딸들이 말이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단독] 김민석 子위해 법 발의한 강득구, 金 청문회 간사하려다 불발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李대통령, 취임 후 첫 출국…G7 정상들과 양자회담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