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야성적 충동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1천만 대 판매를 달성하는 데는 36년이 걸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그 기간을 28년으로 단축했다. 그것도 '현대와 정주영'을 쓴 도널드 커크의 지적대로 "볼트나 베어링조차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창업주에 의해, 그리고 일본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한 협소한 시장과 일본보다 훨씬 뒤처진 기술적'산업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고도.

이 같은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의 효과적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 육성 정책도 큰 기여를 했지만 무엇보다 창업주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야성적 충동이란 케인스가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년)에서 사용한 용어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가의 직감'을 가리킨다.

미국 시카고학파의 창시자인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저서 '리스크, 불확실성, 그리고 수익'(1922년)에서 경제학의 '리스크' 개념과 모든 사업 결정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을 구분했다. 리스크는 수학적 확률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확률로 표현할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측정할 수 없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불확실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결과는 투자 결정은 '분석적'이 아니라 '직관적'이란 것이다. 투자는 불확실성을 딛고 이뤄진다는 얘기다.

케인스가 말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기업이 정확한 수지타산을 바탕으로 굴러간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순전히 거짓말이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야성적 충동,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려는 충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야성적 충동이 흐려지고, 무의식적인 낙관주의가 꺾여서 치밀하게 계산된 기대만 남게 된다면, 기업은 쇠퇴하여 소멸할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에 '야성적 충동'의 발휘를 촉구했다. 그는 "소극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경영하는 기업은 당장 수년은 살아남는 데 성공할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살아남지 못한다"며 "도박이라고 표현할지라도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소리는 벌써 나왔으나 기업은 꿈쩍도 않는다. 5대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10년 만에 3배로 늘었다고 한다. 칭기즈칸은 "길을 여는 자는 흥하고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기업은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웅크리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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