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언젠가부터 이른 아침을 깨우는 건 새소리가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 거대한 크레인이 내는 둔탁한 굉음이다. '집짓기'란 공동체의 풍경에 기여하는 어떤 요소인 동시에 거주에 대한 근원적인 유토피아적 욕망을 푸는 행위라건만, 우리네 세계를 이루는 동상이몽의 과정은 거의 획일화된 풍경 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가진 도시에 대한 태도, 건축에 대한 태도는 결국 우리 삶에 대한 태도와 닿아있기에, 매일 아침 맞는 풍경이 썩 유쾌하지가 않다.
한 시대의 도시는 계획가, 건축가, 정치가의 바람과 역량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꿈, 권력, 그리고 물질력이 혼융된, 시대를 표상하는 것들로 조밀하게 구현된다. 대구만 해도 그렇다. 전쟁 폐허를 극복하며 한국은 유례없이 빠른 근대화를 이룩했고, 대구도 공간 속에 그 과정을 담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는 공간의 근대화 그 자체이며, 그 완성본은 도시 공간 위에 그려진 건축이었다. 앞다퉈 불하받은 시내의 적산가옥에서부터 '달동네' 같은 건축가 없는 건축까지 물질적 결핍 속에서 덧대고 구현해냈다.
이후 생존의 시기를 지나 국가 주도의 성장과 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도시 공간에는 다양한 건조물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복제하듯 찍어낸 공간 속에서는 꿈과 욕망 또한 획일화되었다.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도시민들의 보금자리는 '근대도시계획'이라는 국가의 방식 속에서 강한 자본주의적 코드를 달고 고층 아파트로 교체되어 갔다. 최근 들어 '근대건축물'이라는 이름으로 남루했던 과거의 도시 공간들을 재조명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장소에는 꿈과 내러티브보다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욕망이 강하게 작용한다. 도시는 여전히 토목이 지배한다.
도시 공간은 물리적 건축물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권력관계와 욕망이 투사되고 투쟁하는 장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감성과도 닿아있다. 현재의 도시 공간을 직시함에 있어 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실재와 환영의 구분이며, 신화가 벗겨진 현실과 그것을 감당할만한 우리의 모습이 준비되어 있는 가이다. 우리는 충분히 근대화되었다고 생각했고 발전하였으며, 이제는 되돌아볼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맞춰 터진 경제 위기와 부동산에 대한 괴팍스러운 집착, 그리고 유체 이탈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지체되고 왜곡된 시간들이 머물고 있다.
흔히 이어져 있고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순간들로 무수히 나뉘는, 정체와 반복과 도약을 통해 분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물림해야 할 유산이 있는가 하면, 과감하게 벗어나고 폐기하며 종지부를 찍어야 할 과거도 있듯이, 이제는 단절과 도약이 필요한 때이다. 일단은 나부터 그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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