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박정희와 동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 알 파르도스 광장에 12m 높이로 우뚝 선 사담 후세인 동상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흥분한 사람들 손엔 망치가 들려 있다. 망치로 동상을 에워싼 기둥을 두들겨 보지만 태산 같은 동상은 꿈쩍도 않는다. 결국 미군 장갑 차량이 나섰다. 동상 목에 밧줄을 연결해 당기자 힘없이 쓰러진다. 13년 전인 2003년 후세인의 동상이 철거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바그다드 시민들이 이날 쓰러트린 것은 그냥 동상이 아닌 20년 독재 정권의 상징이었다.

동상은 독재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크면 클수록,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자리할수록 더하다. 과거 소련 도시마다 세워져 있던 스탈린과 레닌 동상이 이를 웅변한다. 구 소련 붕괴 후 독재가 종식되자 동상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철거된 동상은 잘해야 박물관행이다.

요즘 동상 하면 북한만 한 곳이 없다.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동상 건립에 열을 올렸다. 평양은 물론 황해북도 사리원과 남포, 평안남도 평성, 양강도 혜산시 등에 거대한 동상이 잇따라 들어섰다. 다른 도시에서도 우뚝 솟은 동상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동상을 세워서라도 적통을 이어받은 티를 내겠다는 김정은의 아둔함이 북한답다.

우리나라에서도 때아닌 동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내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동상을 세우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성은 갸륵하나 본질을 꿰뚫지는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우리나라 역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명예박사 학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집권 18년 동안 수도 없이 제의를 받았지만 '명예박사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미국 방문 때는 '미 명문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 하니 일정을 하루만 늦춰 받고 가자'는 비서관 요청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잘하라"며 일축했다. 그는 더없이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가 숨졌을 때 검시한 군의관은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허름한 시계를 차고, 칠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병원에 실려온 그가 대통령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말이다. 이런 그를 위해 거대한 동상을 세운다면 박정희는 뭐라 할까.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나랏일이나 잘하라"고 꾸짖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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