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는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 무렵부터 상민(常民)들이 행해왔던 탈놀이다.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대동,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해 5년, 10년마다 특별하게 열었던 마을 굿이었다.
농경사회의 풍농은 마을공동체를 지탱하는 절대적 상징이었다. 풍농은 자연과 하늘의 이치에 따라 결정되는, 신의 뜻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은 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별신굿은 해마다 지내는 동제와 달리 일정한 주기를 갖고 정기적으로 열렸다. 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힘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영험이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되면 마을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의 힘을 북돋워 주며 노여움을 풀기 위해 특별한 큰 굿을 올렸으니 이것이 별신굿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신에 대한 신앙적 의미와 함께 신분질서와 농사일에 눌렸던 마음의 응어리를 신명과 풀이를 통해 해소해 나가는 축제적 성격도 담아내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전통사회, 마을공동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축제였다.
◆마을 대동축제로서의 하회별신굿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일상(삶)은 일과 놀이의 연속이다. 일은 생산을 가져오며 생산은 소비를 낳고 소비는 놀이를 만든다. 네덜란드의 역사철학자 호이징가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하는 특징으로 놀이를 들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사회성과 인간성을 얻는다고 했다. 인간만이 축제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사를 재현하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는 너와 나의 벽을 허물고 하나로 결집시키는 신명이 넘쳐나는 마당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축제는 흥과 신명의 잔치다. 특히, 제의라는 신성함을 갖출 때 보다 더 큰 힘을 지닌다. 신성한 신의 세계와 세속적인 인간세계의 만남은 또 다른 창조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창조적 세계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고,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공존하는 갈등과 반목이 없는 평등 사회가 구현되기 때문이다.
전통사회 속에서 하회별신굿은 지연공동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축제였다. 800여 년 전부터 하회마을에서 전승되기 시작한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이다. 별신굿은 5년, 10년 등 정기적 주기로 열렸다. 해마다 올리는 동제가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보름날 제사를 드렸다면 별신굿은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15일 동안 열렸다.
하회마을에는 별신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탈을 쓰고 춤을 추었다. 풍농과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제물을 마련해 서낭신이나 당제사를 올리는 굿의 목적을 넘어, 탈을 쓰고 춤판을 벌이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와 행위로 굿의 목적이 이뤄지기를 염원했다.
이처럼 마을굿을 통해 별신굿이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주술적인 행위로 탈을 만들고 탈춤을 추게 됐다. 서낭당에서 신내림을 받는 강신이나 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무동, 상상의 동물인 주지 한 쌍을 등장시켜 탈판(마을)을 정화하는 것,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고 모의 성행위를 하는 것은 곧 생산을 북돋워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다.
손상락 안동시 세계유산담당은 "별신굿을 통해 신을 즐겁게 해드림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게 되고 신의 힘을 빌려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주목하는가?
예로부터 하회마을과 인근 지역에서는 "하회별신굿을 보지 못하면 죽어서도 극락에 갈 수 없다"는 말이 전해온다. 실제로 별신굿이 열리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경했다고 전해온다. 그만큼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지 않고는 저승에도 갈 수 없을 만큼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구경거리이자 신에게 자기의 소원을 기원하는 기복(祈福)의 대상이었다. 나아가서는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약손과 같은 것이었다.
비록 제한적인 시'공간이었지만 하회별신굿은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부르짖음이었다. 별신굿이 열리는 기간에는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 젊은이와 늙은이, 부자와 빈자로 나누어진 사회 틀 속 억눌림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별신굿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예전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기간 동안만이라도 없는 자, 눌린 자들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자기들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폭발력이 있었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세상, 상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세상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1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자유를 누리며 평등한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열린 세계였다.
하회별신굿은 탈놀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지배층의 권위를 탈 잡아 비판하고 민중들의 억눌려 있던 숨구멍을 틔워주는 통풍구의 기능을 갖고 있다. 신분사회를 뛰어넘어 화합과 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의 정신을 추구했다. 이처럼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정신은 지역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원동력이었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별신굿이라는 공동체 신앙 속에서 다양한 놀이와 예술적 행위를 담아낸 종합예술이었다. 양반과 상민 간의 갈등을 별신굿을 통해 완화하고 풀어내는 마을 구성원들의 대동축제였다. 이처럼 별신굿은 동제'당제와 달리 마을 주민들에게 역동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하고, 마을공동체의 단결을 꾀했던 '특별한 굿'이었다.
◆탈춤축제, 제4의 물결 주도하는 문화콘텐츠
1997년부터 시작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축제의 시작에서부터 올해까지 20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6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축제,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 명예 대표축제, 대한민국 글로벌축제 등 우리나라 축제가 평가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안동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아우르고 있는 역동적인 하회탈놀이를 근간으로 한 세계적 축제화를 통해 안동문화의 차별화'세계화를 이루고자 했다. 하회탈과 탈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안동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관광자원화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하게 됐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의도 전통사회 속에서 연행됐던 별신굿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문화를 가장 올곧게 갈무리하고 있는 하회마을에서 800여 년 전 만들어져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하회탈놀이가 가지고 있는 전승력은 바로 공동체의 건강성에 있다.
"놀랍다. 한국에 이런 가면이 있다는 것이, 안동 사람들의 얼굴인 하회탈과 안동 사람들의 정신, 삶의 모습들이 잘 갈무리되어 있는 탈놀이를 가지고 있는 안동은 선조들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축복받은 곳이다."
이 말은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경극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북경희극대학교의 학장이 공연을 보고 나서 밝힌 소감이다. 영국 엘리자베스대극장에서 공연을 지켜본 영국왕실 문화참사관들의 평이기도 했다.
임형규(하회탈춤 예능보유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은 "안동탈춤축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축제에 걸맞은 축제가 되고,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정립하고, 나아가 상호 부대낌을 통해 이 시대의 화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안동 사람들부터 하회별신굿탈놀이 속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확고한 생각과 정서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회마을 문화 상징 하회탈의 신비
하회탈(국보 제121호)은 하회마을의 '탈'이며, 하회마을 사람들의 '얼굴'이자 하회마을 문화의 '상징'이다. 하회탈은 12세기경인 고려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로 만든 가면이다. 가면의 사실적인 표정과 뛰어난 제작 기법은 고려인들의 탁월한 예술적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세계적 수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회탈은 마을의 우환을 막기 위해 신의 계시에 의해 만들게 됐다는 신성성을 담고 있다. 제작자는 허도령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연대도 허 씨가 모둠살이를 했던 고려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회마을 성황신의 신격이 의성 김씨 처녀라는 것까지 알 수 있다.
하회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로 인정받는다. 약 800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탈놀이가 끝나면 탈을 액막이용으로 불에 태워버렸던 다른 탈놀이와 달리 하회탈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 제작된 탈로 신성하게 여겨 마을 동사에 보관했다. 사용한 후에는 향물로 깨끗이 닦아서 탈 궤에 넣어 동사의 굴뚝 위에 매달아 보관했다. 자칫 허술해 보이는 이러한 보관 방법을 통해 벌레와 습기로부터 탈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탈을 함부로 만지거나 가까이하면 급살을 맞거나 탈을 본다'는 금기까지 만들어 퍼트림으로써 평소에는 어느 누구도 탈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적인 장치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허도령이 제작한 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총각'별채'떡달이탈)가 분실되고 지금은 10종 11개가 국보로 지정돼 있다.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제작하던 탈은 이매탈로 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오늘날까지 미완성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어 하회탈의 신비함을 더 잘 드러내고 있다.
하회탈의 특징은 코와 눈, 주름살이 잘 조화되도록 제작돼 비록 한 면으로 고정된 가면을 통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다. 얼굴을 뒤로 젖히면 밝고 유쾌한 표정이 되고, 얼굴을 숙이면 보는 방향에 따라 슬픈 표정으로 바뀌게 된다. 또, 턱을 분리해 제작함으로써 대사 전달이 분명하며 말을 할 때마다 턱이 움직여 표정의 변화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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