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바가지를 쓰다

우리말 관용구 중에 '바가지를 쓰다'는 '1. 물건값을 실제 가격보다 비싸게 지불하여 억울한 손해를 보다.'와 '2. 어떤 일에 대한 부당한 책임을 억울하게 지게 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2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혼자 부당하게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독박을 쓰다'로 많이 사용한다. 이 관용구는 '바가지를 씌우다'와 같은 사동형으로도 쓰이는데 이 경우에는 '(주로 어리숙한 사람에게) 가격을 비싸게 받아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바가지를 쓰다'의 어원에 대해서는 개화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야바위 비슷한 '십인계'라는 도박에서 꽝인 바가지를 선택해서 손해를 보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나는 '바가'(瓢)가 공자의 제자 안회의 '단표누항'(簞瓢陋巷)의 고사에도 나오듯이 오래되었고,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물건이라는 점이다. 원래 '바가지'는 '박+아지'로 박을 잘라서 만든 물건이지만 목표자(木瓢子'나무바가지), 동표자(銅瓢子'놋쇠바가지)와 같은 문헌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재료가 박이 아니더라도 물이나 음식을 담는 용기로 확장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바가지를 도박에 사용되는 물품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 하나는 개화기에 들어온 도박과 관련된 은어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널리 쓰일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바가지를 그냥 머리에 쓴 모습을 상상해 보면 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있으면(혹은 예전 드라마의 '호섭이'처럼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으면) 누구나 어리버리(표준어는 '어리바리'지만 그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해 보인다. 이것은 가격도 모르고 속아서 비싸게 사는, 남들은 다 빠져나가고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쓰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비유로 적절해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바가지를 씌우다'는 남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 말을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다.

최근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경제적 보복을 하면서 중국에 수학여행을 가는 우리 학교에도 불똥이 튀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업무 담당 선생님은 학생, 학부모의 여론을 수렴하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일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며칠 새 흰 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이 우리나라가 아닌데 이렇게 우리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런 사정을 들어서 미국을 설득하면 사드를 반값에도 들여올 수 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바가지를 쓰다'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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