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비원·직원이 소방안전관리자…화재 위험 부추기는 '셀프 점검'

전문성 없어 제대로 된 점검 안돼…오후 6시엔 관리자들 퇴근하기도

자체적으로 지정한 관리자가 소방안전을 점검하는 '셀프 소방점검'이 화재 위험을 부추긴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안전관리자가 지정되지만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점검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 실제 화재 참사가 일어난 제천스포츠센터와 밀양 세종병원 모두 내부 직원이 자체적으로 소방점검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10층 건물. 이곳은 경비원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지정하고, 입주 업체의 과장급 직원 2명을 소방안전관리보조자로 지정한 상태였다. 본인 업무가 바쁜 직장인들이 보조자 역할을 할 리 없었다. 경비원은 매일 홀로 4시간씩 소방점검을 하고 있었다. 달서구의 한 4층 건물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이 없는 입주업체 직원이 소방관리를 겸임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소방 점검은 매달 한 차례씩 외부 전문 업체가 하는 게 전부였다. 소방점검일지에는 소화기를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달서구의 한 정형외과 병원은 오후 6시가 지나면 소방 관리에 구멍이 뚫린다. 소방안전관리자 4명 모두 퇴근하는 탓이다. 이곳 소방안전관리자 2명은 소방설비기사이지만 또 다른 2명은 일반 직원이다. 연면적 5천㎡ 이하로 종합정밀점검 대상도 아니다. 이 병원 한 소방안전관리자는 "소방펌프 같은 전문 설비는 쓰는 법을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소방법에 따르면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의 건물주는 소방시설을 상시점검하는 소방안전관리자를 두고 매년 한 차례씩 전문업체의 종합정밀점검을 받아야 한다. 면적과 가구수에 따라 보조자를 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시내에 소방안전관리자를 둬야 하는 건물은 1만6천294곳에 이르고, 소방안전관리보조자를 둬야 하는 대형 건물도 1천710여 곳이나 된다.

더구나 연면적 5천㎡ 이하 건물은 자체적으로 '셀프 점검'을 해도 문제가 없다. 야간에는 소방안전관리자가 없어도 된다. 이 때문에 비전문가가 10~20여 종 화재설비를 대충 관리하고, 부적합한 사항이 발견돼도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비교적 쉽게 딸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방안전관리자는 한국소방안전협회의 24~80시간의 강의를 듣고 시험만 통과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소방 전문가들은 건물 소방점검 책임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정 규모 이상 건물은 직원 대신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외주 전문업체에 의뢰토록 하고, 24시간 운영되는 병원 등은 야간 교대근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소방안전협회 관계자는 "중소 건물을 관리하는 소방안전관리자는 자격증 취득 난이도를 높이고, 대형 건물은 국가공인 자격증 보유자만 소방안전관리자로 둘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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