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방관자

강규섭 나르샤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강규섭 나르샤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강규섭 나르샤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노인들의 발걸음이 더위를 피해 공원의 시원한 숲 그늘로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장기나 바둑을 두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이러한 곳엔 항상 고성이 뒤따른다. 고성이 들리는 곳엔 분명히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다 이긴 장기를 단 한순간에 뒤엎어 버리는 게 훈수란 것이다. 훈수가 나오기 전까지 이기고 있던 사람으로선 원수가 따로 없다. 더구나 막걸리 한 통이라도 걸린 내기 장기라면 훈수의 파장은 엄청나게 커진다.

장기를 두는 당사자도 아니면서 왜 뺨을 맞고, 멱살을 잡히면서 훈수를 두는 걸까? 물론 훈수의 당사자가 나의 친한 친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또는 옆에서 지켜보자니 뻔히 보이는 수를 두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답답한 심정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끼어든 상황일 수도 있다.

훈수 바둑이나, 훈수 장기를 두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자신의 실력보다 두세 수 높은 안목을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 공인 급수가 3급이면 게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즉 방관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 초단의 실력자로 순간적인 변모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방관자의 ‘긍정적 효과’이다. 이는 게임을 벌이는 당사자가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방관자의 편안한 입장에서 냉정한 분석으로 판세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심리학 용어 중에 등장하는 ‘방관자’라는 단어는 ‘부정적 효과’를 지닌다. 요즘 들어서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일상적인 현상으로 거론될 방관자 효과는 인간으로선 피해야 할 현상이다.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빠진 어려운 사람을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무사안일의 태도로 지나쳐 버리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주변인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의 특징은 사고 현장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 때 발생 빈도가 높고, 사람들이 적을 때는 발생 빈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간사에는 ‘방관자’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병존한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탄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베르 까뮈’는 그의 소설 ‘이방인’과 다수의 작품을 통해 조리와 부조리의 병존을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긍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으나, ‘부정’은 긍정이 전제되어야 존재할 수 있으며 그 가치를 지닌다. 부정은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 후 드러난 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정치구도를 요구하고 있다. 큰물이 지나가고 나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 혼란에 빠진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동일 선상의 대척점에 있는 정(正)과 반(反)의 조화에 의한 합(合)을 도출하는 ‘헤겔의 변증법’적 정치관이 절실히 요구되며, 중용에 근거한 군주의 정신이 정치에 살아 숨 쉬는 통치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방관자’의 자세를 위정자들이 갖추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 대한민국 국가의 위상이 살아날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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