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변이식, 똥이 약이다!  

이유진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유진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유진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우리의 옛 속담이다. 이 말은 '아무리 하찮거나 흔한 것이라도 막상 필요해서 찾으면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왜 개똥, 즉 '똥'이었을까? '똥'과 '약'을 결부시킨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속을 이제와서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옛 속담은 과학기술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선견지명'이자 '예언'이 되어버렸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용해 장염을 치료하는 대변 이식술(대변 세균총 이식술)이 새로운 치료방법으로 미국·유럽을 비롯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동산병원이 지난해부터 감염성 질환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위막성 대장염)' 환자들에게 대변 이식술을 시행하고 있고, 치료 후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다. 똥이 약이 되는 대변 이식술에 대해 알아본다.

◆ "남편의 똥이 나를 살렸다?"

A 씨는 치아에 염증이 생겨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다발성 경화증 탓에 면역 억제제를 먹고 있었기 때문인지 더 쉽게 감염되었다. 항생제(클린다마이신)를 복용한 몇 주 뒤, 새벽에 변의를 느끼고 설사가 나올 것 같고 토할 것 같았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직장과 주변 부위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 날 낮에 통증이 가라않았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자 피가 섞인 짙고 검은 점액질이 나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완전히 공포에 사로 잡혔다.

A 씨는 주치의의 소개로 전문가(외과의사)를 찾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 주 뒤에도 욕지기, 경련통, 대변 속 점액질, 식욕감퇴, 골반 부위 전반의 통증 등의 증상은 그대로 였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고, 테스트용 대변 샘플을 제출한 뒤 후라질(메트로니다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균 치료에 제일 먼저 사용하는 항생제) 처방전을 받아들고 퇴원했다.

처음 증상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날 때까지 다양한 항생제 처방이 반복되었고, 어김없이 재발했다. 장기들은 약해지기 시작했고 탈모도 진행되었다. 의사는 대변이식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고, A 씨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 정말로 '감염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기증자는 A 씨의 남편이었다. 결과는 훌륭했다. 경련통과 통증은 사라졌고 배가 출출했다. A 씨는 "대변을 몸 안에 넣는다고 생각하면 역겹지만, 내 남편의 똥이 내 목숨을 구했다"며 "우리 부부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고 말했다. (미국 유타주에 거주하는 A 씨의 체험담 요약)

◆ 장내 세균의 균형이 건강이다!

이유진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변 이식술은 기존의 표준 치료법과는 달리 항생제 내성 발생 등의 부작용이 없다는 점 등에서 안전성을 인정받았고,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치료에 90% 이상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신기술이라 환자 본인의 부담금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건강한 사람의 장 내에는 500~1천 가지 종류의 세균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장내 미생물의 균형 상태는 인체 내에서 소화기능, 면역기능, 감염에 대한 저항성 확보, 비타민 합성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항생제, 화학적 독성물질, 병원균 감염 등의 원인에 의해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질 수 있고,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 상태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 다제 내성균 감염, 염증성 장질환, 대사증후군, 비만, 당뇨, 아토피, 대장암, 간질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가면역 질환의 발생과 연관이 되어 있다.

특히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은 주로 항생제 사용과 관련해 발생하며, 병원에서 발생하는 설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증세는 항생제 사용 중단 만으로 호전되는 가벼운 상태에서부터 생명을 위험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표준치료는 특정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35% 정도에서 재발하며, 특히 고령이나 면역저하 환자에게서는 재발률이 60%까지 높아진다. 사망률은 6.9% 정도이다.

◆ 똥이 약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약물로 잘 조절이 되지 않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환자에 한해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에게 주입하여 환자의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 상태를 회복하게 하는 치료법'인 대변 이식술(대변 세균총 이식)을 시행한다.

이유진 교수는 "대변 이식 전담 교수가 환자의 자세한 병력을 청취하고 진찰한 뒤, 혈액과 대변검사를 통해 환자에게 적합한 건강한 기증자를 선별하고, 기증자의 대변을 특수처리해 주로 대장내시경으로 이식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소화기학회의 진료지침에는 ▷표준 치료 후 3회 이상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이 재발할 경우 대변 이식을 권고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경증과 중증의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환자에게 대변 이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6월 대변 이식(대변 세균총 이식술)이 신 의료기술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널리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으며 전문의사의 숫자도 아주 부족한 상황이다.

이 교수는 "대변 이식술의 부작용 없는 안정성은 인정 받고 있지만, ▷적합한 대상 환자의 선정 ▷건강한 대변 기증자의 엄선 ▷대변 특수처리 과정에서의 철저한 주의와 전문성 ▷대변에 대한 심미적 거부감 ▷높은 환자부담금(건강보험 적용 안 됨) 등이 확산의 장애 요인"이라고 말했다.

◆ 제2의 게놈 프로젝트?

사실 대변 이식술은 제2의 게놈 프로젝트로 불리는 '마이크로 바이옴'의 한 영역이다. 마이크로 바이옴은 인체에 존재하는 병원균 등 모든 미생물의 총집합을 말한다. 체중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인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그동안 건강이나 질병의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대변 이식이 필요한 대표적 질환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의 경우도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항생제를 이용한 표준치료가 가능해 관심이 적은 편이다. 반면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대변 이식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안전지대라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해외 논문들은 경제 선진국들의 서구화된 식습관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어, 식습관의 서구화가 급속히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주의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미국 보스턴의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은 10명이 넘는 전문의가 근무하며 기술을 기발하고, 대변 한 덩어리에 소정의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천 명의 기증자를 모집하고 있다. 또 미국 내 10여 곳의 대학·병원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유진 교수는 "최근 장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대변 이식술이 다양한 질병의 치료 및 예방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시되고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현재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치료에만 쓰이지만 향후에는 염증성 장질환이나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에게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이유진 계명대 동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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