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시농업인구 190만 명(2017년 현재), 매일신문은 2019년 새해 '도시농업 연중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해마다 흙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 봄이면 전국 신문과 방송이 도시텃밭 가꾸기에 관한 기사를 쏟아낸다. 근교에서 텃밭을 구할 수 있는 곳, 토지 임대비용, 텃밭 가꾸기에 필요한 준비물, 텃밭농사의 재미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019년 매일신문이 마련한 '도시농업 기획'은 텃밭에 관한 피상적인 정보제공을 넘어 텃밭 가꾸기에 내포되어 있는 가치, 즉 작은농사가 사람의 생활과 사회 공동체를 어떻게 가꾸고 변화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대구시의 도시농업정책과 각 사회단체 및 개인의 독특한 텃밭 이야기, 해외 텃밭 사례도 소개한다. 계절별로 텃밭 가꾸기와 관련한 핵심 포인트도 제공한다. 본격 시리즈는 2월부터 시작한다. -편집자주-

◇ 효율성 따지지 않는 '작은농사'의 선물
사람들은 텃밭 가꾸기의 매력을 땀 흘리며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이 기른 건강한 채소를 먹는 데 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깨작깨작 호미질이나 하며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는 데 무슨 땀을 흘리나 싶겠지만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풀을 뽑고 호미질을 하노라면 평소 좀처럼 땀을 흘리지 못하는 노인들도 구슬땀을 흘린다.
요즘 대형마트에 널린 게 '유기농' 이지만, 유기농 인증마크를 붙이고 시중에 나와 있는 채소나 과일 중에 유기농이 아닌 것들도 많다. 그러니 자기 손으로 기른 유기농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보람이고 기쁨이다.
하지만 텃밭농사의 이점은 그 이상이다. 그리고 그 이점 대부분은 '소규모 재배'라는 텃밭농사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생업농부들은 농사를 지어 이윤을 남겨야 하는 만큼 넓은 면적에서 대량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넓은 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생산성을 높이자면 화학비료와 농약, 기계장비를 투입해야 한다.
이에 반해 소규모 텃밭농부들은 농약 대신 손으로 벌레를 잡고, 풀을 뽑는다. 그만큼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이는 효율성이나 생산성에 주목하지 않는 '작은 농사'가 주는 선물이다.

◇ 일을 하고 원기를 얻는 능동적 노동
전인적인 활동이라는 점도 텃밭 가꾸기의 매력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게 됐다. 반면 각 분야에서 업무 전체를 관장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좁은 부분의 작업에만 집중한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가령,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자동차만, 그것도 제작공정의 특정 부문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성과 효율성에 집중하느라 인간소외가 발생하는 것이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 찾아서 공부하고, 이웃 텃밭농부에게 묻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게 된다. 상상력을 동원해 전인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다. 까닭에 같은 양의 노동을 하고도 전업농부는 쉬이 피로를 느끼지만 텃밭농부는 오히려 원기를 얻는다.

◇ 잃어버린 '마당'을 되찾고 공동체 회복
텃밭농사는 공동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집 주인의 사적 공간인 동시에 어느 정도 공적인 공간, 즉 이웃 사람이 예고 없이 들어와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장소였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웃에 어떤 일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까닭에 마당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다.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주택은 마당이 있는 집과 전혀 다르다. 물리적으로는 옆집과 붙어있지만, 이웃을 철저히 차단하고 서로를 소외시킨다.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면 상황은 달라진다. 텃밭을 가꾸느라, 넘쳐나는 채소를 나누느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이어진다. 날씨에 관해, 고추와 배추 작황에 관해….

◇ 격리가 아니라 역할 부여로 자존감 회복
노인과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대체로 '격리보호'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은 자존감이 낮고, 자신을 항상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들과 종일 홀로 집에 머무는 노인들에게 텃밭을 제공하면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2004년 대구시 수성구청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지체장애인들에게 텃밭을 분양했다. '장애인 행복텃밭'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해도 수성구청은 장애인에게 분양하는 형식이 아니라 장애인이 포함된 가족을 대상으로 텃밭을 분양했다. 장애인의 이동과 농작업의 어려움을 고려해 가족 전체 구성들이 신체장애가 있는 식구를 돕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공휴일에만 텃밭이 북적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가족이 쉬는 주말과 휴일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했던 장애인들이 스스로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돕기 시작하니 장애인들은 거의 매일 텃밭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이 가능한 장애인이 자동차로 다른 장애인들을 텃밭에 태워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텃밭에 모인 사람들은 수다를 떨고, 채소재배 정보를 교환하고, 겨울 김장걱정을 함께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김장을 담가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늘 보살핌만 받던 사람들이 나누어 주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 성취를 얻었다.
행복텃밭은 장애인을 격리하는 대신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돕도록 한 모델이다. 수성구청은 2004년 50가구에 텃밭을 분양했으나, 2017년 현재 100여 가구에 분양하고 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꾸는 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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