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룸살롱 다니는 세종대왕 때문에 울다

화난 위인들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해 강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화난 위인들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해 강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시청 감사실입니다. 광고 의뢰 건으로 전화했습니다."

순간 의아했다. 감사실에서 광고를 한다고? 반면 시청 감사실도 광고하는 시대가 온 건가? 설레기도 한 전화였다. 알고 보니 상황은 이랬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공직자의 청렴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포커스가 공직자들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곧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공직자의 청렴과 시민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광고 의뢰였다. 순간 이 광고가 내게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뇌물에 대해 한이 맺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룸살롱 영업이 그 골칫거리였다. 우리는 클라이언트와 미팅할 때 늘 반응은 좋았다. 광고제 수상작과 공익광고 등을 신선하게 봐주셨다. 활짝 웃는 광고주의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계약할 수 있겠거니 설렜다. 그러나 막상 계약할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황이 달라졌다.

알고 보니 상황은 이랬다. 다른 회사들은 룸살롱에 데려가서 몇백씩 써가며 광고주의 비위를 맞춰 광고 계약에 성공했다. 즉, 큰 광고 계약은 로비의 산물이었다. 나처럼 작품 몇 점을 보여주고 광고를 따려 해도 계약이 될 리가 없었다.

그때 룸살롱 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광고주 유치를 위해서 실력보다 영업력이 더 중요한 시장이었다. 주와 객이 전도된 시장이었다.

'아이고 진짜 더럽다. 이력도 경력도 없다고 하길래 광고제에서 상도 받아왔는데…. 근데 이제 또 딴 걸 달라고 하네.'

위인들의 화난 모습이 가장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빅아이디어연구소
위인들의 화난 모습이 가장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빅아이디어연구소

이런 문제로 고민할 때쯤 시청 감사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뒷돈 주고 룸살롱 영업하는 사람들에게 드디어 한 방 날릴 기회가 왔다. 필자에겐 가장 직관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무엇을 보여주면 그 사람들이 쫄까? 보기만 해도 경외감이 드는 사람. 그분들이 말하면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사람이 누굴까 고민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어르신들'이 필자가 찾은 답이었다. 바로 세종대왕, 신사임당, 퇴계 이황 선생님이었다. 위인들이 화난 모습과 돈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가지 얘기를 따로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분들이 지폐 안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빅아이디어는 이렇게 연결고리가 딱 맞아 떨어진다.

전광판에서 화난 위인들의 표정을 보여주면 임팩트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폐 속 위인들의 온화한 표정이 줌인 되며 눈썹이 구겨진다. 위인들이 인상을 쓰니 일반인보다 훨씬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카피로 메시지를 정박시켰다.

'공직자는 받지 않고, 시민은 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광고주인 시청 감사관님의 컨펌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감사관님도 공직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라 공무원다운, 즉 자극적인 메시지보다 안정적인 아이디어 시안을 원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실제로 내가 공무원에게 제안한 많은 아이디어가 너무 튄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청렴은 공직자만이 힘써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과 공직자가 함께 이루어 가야 할 문제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청렴은 공직자만이 힘써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과 공직자가 함께 이루어 가야 할 문제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그래도 이 광고는 꼭 하고 싶었기에 시안을 들고 감사실로 갔다. 한껏 심호흡하고 발표를 시작했고, 감사관님의 피드백은 1초 만에 날아왔다.

"좋습니다. 이 시안으로 갑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감사관님과 필자는 뇌물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광고로 공무원과 이렇게 손발이 잘 맞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뒷돈 거래, 룸살롱 영업을 뿌리 뽑겠단 의지가 우리 모두 강했다. 더 놀라운 건 시청의 반응이었다. 자극적인 메시지를 꺼리는 시청 공무원들도 이 광고를 칭찬하고 나섰다.

"이번 감사관실 광고가 아주 좋더라고. 공무원들 사이에 소문이 좀 났어! 김 소장."

결국, 이 작품을 통해서 시청의 다른 과와도 인연이 생겼고, 더 많은 광고를 만들게 되었다.

광고인과 공무원이 통한 이 작업의 결과는 어땠을까? 3년이 지난 지금, 큰 변화가 생겼다. 우리 회사는 더 룸살롱 영업 때문에 일을 못 따는 경우는 없어졌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떤 로비가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많이 없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사회 공익적인 차원에서 만든 광고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내가 되어 버렸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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