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뒤 한동안 야경꾼들이 밤 중에 대구 시내 주택가를 순찰 다녔다. 그러나 야경꾼이 도둑을 잡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딱딱 소리 나게 두드리며 다녔으니 도둑이 잡힐 리가 없다. 도둑 예방이 목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도둑이 무서운 집들은 밤 중의 딱딱이 소리는 반갑고 정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에 도둑들이 훔치는 것은 기껏해야 댓돌에 벗어둔 신발이나 줄에 널어 논 빨래. 부엌의 냄비나 식기, 장롱 속의 옷가지나 금반지 등으로 요즘 보면 돈도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뭘 그렇게까지 방범에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이제 야경꾼들은 없어졌다. 요즘은 고관대작이나 갑부들 집에 가면 물방울 다이어, 금 괘, 달러 등 훔칠 것이야 많겠지만 간 혹은 그들 자신이 도둑인 경우도 있으니 야경꾼이 누굴 지켜야 될 지 모르는 탓에 그런 직업이 없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야경꾼 소리는 한밤중 밖에서 들리는 소리였지만 초저녁에 집에서 밖으로 울리는 소리도 있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다. 옛 어른들이 세 가지 기쁜 소리는 '어린애 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 그리고 '다듬이 소리'라고 했다. 요즘은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는 바로 끄집어내어 입는 시대가 되었다. 빨래 기술도 좋아지고 옷감도 좋아지니 풀 먹이고 다듬질할 겨를이 없다.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쓴 '규합총서(1809년)'에 '도침법'이 나온다. 비단은 대왕 풀을 먹이고 무명과 모시는 오미자 물에 풀을 풀어 섞어 먹어야 되며 명주는 달걀흰자를 녹말풀에 섞어 쓰라고 나온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푸새' 또는 '푸답'이라고 하는데 풀은 주로 쌀풀이나 밀가루 풀을 썼다. 쌀이 귀해 감자 풀이나 피쌀 풀을 쓰기도 했다.
다듬잇돌은 화강석, 남석 같은 단단한 돌을 주로 썼고 방망이는 박달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야문 나무로 만들었다. 다듬이질은 옷감의 구김살을 펴고 부드럽게 하기 위한 방법인데 옷이 촉촉할 때 걷어서 손으로 대강 만져 편 다음 우선 발로 밟는 발 다듬이를 한다. 그렇게 한 뒤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린다. 다듬이질은 한 사람이 양손에 방망이를 잡고 두드리는 솔로와 두 사람이 양손에 방망이를 쥐고 마주 앉아서 맞다듬이질을 하는 듀엣이 있다. 듀엣으로 방망일 질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노라면 그 유연한 몸짓과 음악적 가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려치는 속도와 강도의 일정함과 방망이가 서로 부딪치지도 않고 고르게 내려치는 모습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섬세한 연주를 보는 것과 같다.
다듬이질은 가을이나 겨울의 겹옷이나 솜옷 등의 옷감과 이불 홑청을 간수 하기 전에 다듬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듬이질은 주로 늦가을 한철과 겨울철에 하였다. 야문 돌위서 연주되는 빨래 방망이의 연주는 울안에서 골목으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어린 애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취객들은 그 소리에 귀가를 재촉하였다. 다듬질할 때 부르는 민요는 별로 없다. 거제도 동부면 가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다듬이 소리 정도가 전해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닥또닥 다듬이 소리/그 다듬이 듣고 나나/요내 귀가 짱짱하네. 또닥 닥 다듬이 소리/골골마다 울려 퍼져/ 우리 님 간장을 다 녹인다."
대구 북구청에서 금호강 가다 보면 침산(오봉산이라고도 부른다)이 있다. 그 침산의 '침(砧)'자는 다듬잇돌이라는 뜻인데 타지인들 중에 엔간히 한자를 안다는 사람이라도 그 글씨를 잘 읽을 줄 모른다. 오래전 기자들이 써준 육필 원고를 아나운서들이 읽던 시절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침산동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나운서가 "점산동에서…."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았다. 한문으로 원고를 휘갈겨 써준 기자나 읽을 줄 모르며 대충 발음하는 아나운서나 둘 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자 쪽이 더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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