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철학자 프레게는 말의 '대상'(對象)과 '의의'(意義)를 구분하였다. 가령 '책'이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지식을 글로 표현하여…"와 같은 의의가 있다. 또한 '동그라미'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대상인 '○'를 가리키며,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와 같은 의의가 있다.
말과 대상의 관계를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하는데 특정한 대상을 반드시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영‧미인은 'book'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과 대상의 관계가 자의적일지라도 말은 그 나름의 의의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좋은 의의를 지닌 말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 또는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 남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명할 때도 있다.
대체로 대상이 하나의 말을 갖지만 두 개 이상일 때도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금성이 새벽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르고 해질녘에 보일 때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금성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샛별'은 "새벽에 뜨는 새로 난 별", '개밥바라기'는 "개의 밥그릇을 연상시키는 해질녘에 뜨는 별"이라는 서로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의의가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다. 이런 경우에는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인데, 이때는 언어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줄 뿐 특정한 말의 선택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을 때는 어느 말을 선택하는가가 논란의 소지가 있고 말의 품격과도 연관되므로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특히 감정과 이념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최근에 특정 그룹을 '달빛 기사단' 대신 '달창'(달빛 ○○단), 대통령의 '외교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불러 논란이 되었다. 각각의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인 의의를 지녔으므로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그래서 논란이 된 것이다. 한국이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상(像)을 일본은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이 두 말의 차이도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므로 한일 간에 명칭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은 좋은 말을 써 대중들이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일본은 나쁜 말을 써 혐오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내지만 듣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낸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본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국민의 품격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품위 없는 말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이고 청소년들에게도 본이 될 수가 없다. 말의 격(格)에서 인격이 나오기 때문에 감정과 이념이 개입된 영역에서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뿐만 아니라 의의도 특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듣는 이의 출신 지역, 인종, 종교, 계층뿐만 아니라 이념, 학력, 연령, 성별까지 고려하여 역지사지함이 말의 격을 높이는 길이다.
김윤나의 '말 그릇'(2017)에 따르면 말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았다고 한다. 나를 닮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나의 말이 막말의 대명사인 '귀태'(鬼胎)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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