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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 대학분권에서 시작하자] 대학-지자체 간 협력·투자 중요

대학들이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 예산을 쥔 중앙 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 구조를 탈피하고
대학들이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 예산을 쥔 중앙 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 구조를 탈피하고 '대학분권'을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계명대에서 재학생들이 취업 관련 특강을 듣고 있는 모습. 매일신문 DB
경북대가 지난 6월 지역 고교생을 초청해 개최한
경북대가 지난 6월 지역 고교생을 초청해 개최한 '2019 경북대 열린교실' 모습. 매일신문DB

2015년 지역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학교는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서 C등급(90위권)을 받으면서 정원 7%를 감축해야 했다. 지역 거점 국립대 중 그나마 경쟁력 있는 학교로 손꼽히던 터라 대학 구조개혁평가로 인한 타격은 상당했다. 같은 기간 서울 주요 대학 9개교의 평균 정원 감축률은 1.1%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는 2014년도 이래 자율적 감축량을 포함한 모든 대학 정원 감축량이 4만7천명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부의 개입으로 대학의 자율성이 저해됐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대학의 정부 의존, 지역 경제에도 타격

지난 5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를 비롯한 5개 교수단체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교육부 폐지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에 대해 "대학 교육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정부의 길들이기에 얼마나 순응했는지 측정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교수단체는 "교육부의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은 대학의 자율성과 역량을 철저히 훼손시켰을 뿐 아니라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을 통제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왔다"며 "관료들이 주도해온 획일적인 규제와 간섭 때문에 대학은 학문 연구의 창의성과 혁신, 교육의 민주성과 공공성의 가치로부터 점점 멀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대학 현장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중앙 정부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곧 지역 경제의 흥망과도 직결된다는 것.

김규원 경북대 교수(사회학과)는 저서 '교육문제와 교육정책'에서 "중앙집권식 대학분할 경쟁체제는 대학 간 무한경쟁을 불러 일으켜, 인적·물적 자원의 과다 투입에 의한 '고비용 저효율 교육'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하면서 "대학의 바람직한 미래를 견인해내고 질적 향상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지역분권형 대학 공유 협력체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로선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이 지역과 동떨어져 있는 탓에 지역 대학의 성장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대학의 한 교수는 "지역 사회의 공헌도, 지역 기업과의 협력 등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획일적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예산을 중앙 정부에 의존하다 보니 정작 지역에 필요한 역량을 쌓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지역에 필요한 연구개발이 아닌 중앙 정부 사업에 맞춘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김상동 경북대 총장은 "지역 균형발전을 일궈가는 방안은 지역에 우수한 산업체를 유치하는 데 있고, 산업체의 기술 원천은 연구에 있다"며 "지역 대학의 연구분권을 강화해야 하지만 현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정책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열린
최근 열린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지원협의회' 회의에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유관기관 관계자, 지역 대학 총장들이 손을 맞잡고 지역 인재 양성에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대구시 제공

◆대학-지자체 간 협력·투자 중요

정부로부터의 대학 분권 달성을 위해서는 결국 지자체의 역할이 강조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미래사회 대비 고등교육의 혁신을 위한 고등교육 재정 확보 방안' 연구보고서는 지자체의 고등교육 투자액이 1% 증가할 때, 시 지역의 다음해 GRDP(지역 내 총 생산)는 0.002%가량, 군 지역은 0.001%가량 늘어난다고 밝혔다.

이형철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경북대 물리학과 교수)은 "동독 변방의 가난한 도시였던 드레스덴이 유럽에서 손꼽히는 대학·과학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작센 주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덕분이었다"며 "정부가 대학 및 연구소 재건과 교수 초빙에 지원을 아끼지 않자 관련 기업들도 잇따라 공장과 연구소를 이전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지역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경북대 등 거점 국립대는 이미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오히려 서울 주요 대학들보다 덜 투자하고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행히 대구의 고등교육기관 지원 규모는 전국 최상위권이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대구는 111개 사업을 통해 총 559억원을 지원했는데, 이는 전국 16개 시·도 지자체 지원액 중 가장 많은 금액(14.1%)이다.

최근에는 대구시가 지역 대학과 연계,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시와 대학이 개별적으로 추진하던 인재 육성 사업을 한데 합쳐 유기적으로 이끌어나가기로 한 것.

이를 위해 대구시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지원협의회'를 확대·구성했다. 위원을 기존 대구권 대학 총장에서 경산권 대학 총장으로 확대하고, 대구상공회의소·한국사학재단·대구경북연구원 등 다양한 유관기관이 참여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여, 지역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방안이다.

경북대·경일대·계명대·대구가톨릭대·대구대·대구한의대·영남대 등 7개 학교에 사회적경제 교과목을 개설 및 운영하고, 대구시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각각 제도적인 지원과 강사 제공을 맡는다.

대구권 소재 대학에 대구경북지역학 교양과목 개설도 늘린다. 대구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과 산업체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역선도대학 육성사업도 이어나간다.

김영철 계명대 교수(경제금융학전공)는 "지방분권을 이끌 자원이 지역에서 생산, 공급되려면 대학의 역할이 크다. 그럼에도 그동안 지역 대학은 지방분권 논의에서 배제돼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지방분권 발전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는 반드시 지역 대학 활성화 문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고교생 3천8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는
전국 고교생 3천8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는 '2019 경북대 오픈캠퍼스' 모습. 매일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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