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술 작품 경매에서 '작가의 똥'이란 작품이 한 캔에 1억원에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1961년 이탈리아 미술가인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가 발표했는데 90개의 깡통 겉면에 '작가의 똥(Merda),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제작'이라고 쓰여 있다. 밀봉된 이 깡통 윗면엔 작가의 서명이 있다. 당시 예술계의 작가 네임밸류를 풍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씁쓸함에 생각을 곱씹으니 똥내가 나는 듯하다. 도대체 그 작품을 1억원에 구매한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만한 돈을 낸 것일까?
최근 A 배우가 주연을 맡은 어떤 뮤지컬이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똑같은 공연이라도 그 배우가 라인업 된 회 차에만 매진되었으니 배우의 네임밸류는 이제 제작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캐스팅 요인이 되었다. 수천만원의 개런티를 감당하면서도 어떤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입장은 그 배우가 공연 중에 애드리브로 러닝 타임을 늘려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연출가의 입장으로 전가시켰다. 왜냐하면 관객이 티켓을 구매한 목적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배우를 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관객을 관객이라 할 수 있는가? 문화향유 시민 집계에 포함되어도 되는가? 뮤지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한지 벌떼는 알고 있을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조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듬이 등을 켜고 눈에 불을 밝히는 1번 바이올린 주자의 이름은 알고 있을까? 아니 최소한 작곡가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연출가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그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뮤지컬에 대한, 공연 예술의 특징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질문하고 싶다.
대중은 멍청하다. 몇 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을 기억할 것이다. SNS를 통해 시식 후기가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마트를 뒤지고 다녔다. 어떤 마트에서는 시간을 정해 판매하기도 했고 인터넷 중고장터에서는 낱개로 과자를 팔고 사기도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뜨거웠던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연극 연출가이다. 벌떼 같은 대중을 원하지 않는다. 연극 한편이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는 관객, 기대에 못 미쳤다면 화를 내며 나와 싸울 수 있는 관객, 그래서 1시간이 넘는 당신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해 내가 사과할 수 있는 관객을 원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으며 화가 난 대중이 있다면 한 연극인의 기우로 토해낸 글에 대해 안도의 사과드린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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