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브롱스에 위치한 칼버리 병원(Calvary Hospital) 1층 안내 데스크에 들어서면 벽면에 새긴 문구 하나가 시선을 이끈다. '여기는 삶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It's Where Life Continues). 입원 환자 대부분이 말기 암 환자로 1, 2주 안에 사망하지만, 병원이 임종을 맞는 환자를 바라보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환자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존엄을 잃지 않고 가족과 작별할 수 있는 '마지막 집'이다. 병원은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하도록 환자를 지키며,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마저 함께 어루만진다.
지난해 12월 초 기자와 함께 칼버리 병원을 찾은 전인병원 손기철 병원장은 "이 곳을 방문할 때마다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회복할 수 없는 환자에게도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면서 "환자를 대하는 칼버리 정신은 '환자 우선'이라는 통합의료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사별 환자 가족까지도 돌보는 병원
1899년에 설립된 칼버리 병원은 다제적 완화요법과 생의 말기치료(end-of-life care)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미국 전역에서도 유일하다. 환자 대부분은 말기 암이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는 질환을 앓고 있는 성인이다.
뉴욕 브롱스와 브루클린 등 모두 4곳에 입원형 시설이 있으며, 매년 6천명의 환자들이 병원 치료, 가정 간호,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있다. 입원 환자의 평균 재원일은 24일 가량이지만, 절반 가까이가 1, 2주 안에 사망한다.
병원은 어떻게 하면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고통없이 편하게 보낼 것인가'에 몰두한다. 여기에는 환자의 육체적, 정서적 고통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의 고통까지 포함한다. 칼버리 병원은 "환자가 입원을 하면 환자와 그 가족들을 함께 입원시켰다"고 생각한다. 암이 퍼지는 것은 환자에게만 퍼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퍼지는 것으로 환자 치료는 가족 치료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곳의 패밀리케어센터는 오로지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좋은 식당을 찾아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 주고, 환자가 원할 경우 성인식이나 결혼식까지 병원에서 치를 수 있도록 한다. 사계절 가꿔 놓은 아름다운 테라스며 야외 공간으로 환자침대를 옮겨 준다.
미국의 다른 병원과는 달리 면회시간의 제한이 없다. 24시간 방문이 가능하고 아이들도 찾아오도록 격려하고 있다. 병실에는 가족용 보조 침대가 있어 자유롭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환자 사망 후에는 사별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외롭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사별가족들을 모아 캠프를 열어 그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져 준다. 칼버리 병원 1층 벽면 전시실에는 사별가족 어린이 캠프 참가자들이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한 애뜻한 메시지를 붙여 놨다.
뉴욕 병원에서 전문간호사로 활동하는 박민나 박사는 "4년 전 칼버리 병원에서 6개월 연수를 하면서 환자와 그들 가족까지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의료가 무엇인지를 느꼈다. 환자에 대한 헌신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연수단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24시간 면회 등 환자가 원하는 모든 것 배려
브롱스의 칼버리 병원은 200개 병상 규모로 모두가 1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병동 각 층에는 가운데 간호사 스테이션을 중심으로 입원실이 방사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호사 3명과 조무사(간호 테크니션) 4명이 환자 25명을 돌본다.
병실 수간호사인 루시 허난데즈 씨는 "최소 1시간에 한 번 꼴로 병실에 들러 환자에게 말을 붙이고 상태를 살펴본다. 모두가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제공해주고 싶어 한다"고 했다.
올해 71세인 루시는 칼버리에서 51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간호 테크니션으로 시작했다가 성인간호 전문간호사 자격까지 땄다고 했다. 그녀는 "칼버리 병원은 65세 정년이 지나도 계속 근무가 가능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오랫동안 병원에 있으니 환자에 대한 사명감 또한 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둘러 본 개인 병실은 3~4평정도의 크기였다. 환자용 침대가 없었다면 병실 분위기가 아닌 개인 공간처럼 여겨졌다. 햇볕 잘 드는 창가 선반엔 화분과 그림, 가족사진 액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한 병실에서 만난 흑인 여성 환자는 "이곳에서는 불안하거나 외롭지 않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네일 서비스도 해주고 꽃 장식도 만들어 주면서 행복하게 해 준다"면서 "의사와 간호사들도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잘 챙겨주기 때문에 칼버리에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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