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인권의 시대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2020년 새해가 희망차게 밝았지만 새해를 전후한 우리의 뉴스는 여전히 어둡다. 한 가족은 빈곤과 빚 독촉에 몰려 삶을 마감하고, 살해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온 한 인도 가족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또다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지구 한쪽에서는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한 아이는 친부모 손에 고통을 당하다 목숨마저 잃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에는 여전히 사람이 노동하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주거의 안정을 잃어버린 이들은 철거를 앞둔 건물 앞에 주저앉아 있다.

학생들의 성적과 두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데도 각 학교에서는 성적 향상을 위한 두발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 조사한 사건 중에는 흡연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강제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기본권인 학생 인권을 논의하면 교권이 갑자기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수많은 청년들은 '수저'라는 신종 계급론에 의해 각자의 고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가정을 꾸리려던 이들도 벌이로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의 무게에 행복을 미루어야 했다.

여성들의 삶 역시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여성은 아름다움이 미덕인 듯 칭송하고 있다. 남녀평등한 세상이고,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했다는 뉴스 아래에 여성은 아직 밤길이 두렵다. 한국의 취업률과 평등지수 역시 OECD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하는 이들도 노동에 의해 자유로운 삶이 아닌, 노동에 예속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내가 가진 휴식의 권리를 행사함에도 사측의 눈치가 보이고, 쉬는 동안에도 울려대는 핸드폰 메시지를 무시할 수가 없다.

올 한 해 조금씩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할 때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 편하지만은 않다. 인권은 낯설고 힘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인권은 아직도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인권을 이야기하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배부른 소리라는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도 했다. 앞서 세상 살기 고단한 이야기를 나열한 것들은 바로 이 인권이라는 영역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례들이다. 즉,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면 오히려 먹고살기 편해지는 세상이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사소한 불편함부터, 끔찍한 인간 존엄의 훼손까지 인권의 가치는 두루 작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해 일을 한 후 장을 보고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에도 인권의 원리는 작동한다. 저 멀리 멕시코의 국경과 중동의 전쟁 난민 혹은 과거의 대량학살과 인종차별에도 인권의 가치가 논의된다. 인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기본 원리이자 가치 기준이다. 어렵고 낯선,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식해야 한다.

덧붙여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48년 만든 약속이 세계인권선언문이다. 선언문 중에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고(14조),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22조).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우리 사회는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해야 하는 인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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