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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내겐 값진 기억 '고물'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나에게 고물이란 오래된 가치를 먹고 배부를 수 있는 값진 양식과도 같다. 예전 우리가 익숙하게 보았던 골목을 누비며 외치는 고물장수의 고물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집에 있는 고물을 이것저것 챙겨서 강냉이와 바꿔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를 가졌던 고물! 우리 일상에서 고물이란 그 언젠가 새 박스에 예쁘게 포장되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줬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고물은 빈 공터에 몰래 버려야 하는 쓰레기와 같지는 않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고 물건들은 누가 사용했는지 알 수 없기에 재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문화가 있었다. 이러한 특유한 문화로 인해 아마 우리나라에는 벼룩시장이 우리생활 속에 가까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 독일 유학시절 매주 수요일이면 길거리에 버려진 다양한 가구, 전자제품 등을 지나가던 독일인들이 자연스럽게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골라가는 것을 보았다. 말로만 듣던 독일인들의 검소함을 직접 체험했다.

누구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어 버려진 물건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가지고 싶은 소중한 물건이 되는 것이 아마도 중고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에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면서 나에게 남는 고물, 중고에 대한 깊은 추억은 바로 벼룩시장을 다녔던 기억들이다. 매주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을 가기 위해 일주일을 어린아이와 같이 기다리며 새벽에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그것으로 향하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아득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독일의 벼룩시장은 다양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구수한 닭고기 굽는 냄새, 터키인들의 향신료 냄새가 기억으로 남는다. 그 속에 줄줄이 열을 맞춰 들어서 있는 가판대와 다양한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로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그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보물 찾기를 하는 사람들!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들! 또한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질감의 문화! 이렇게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벼룩시장의 풍경들이다.

그때 나에겐 벼룩시장은 모자란 유학 생활비를 벌게 해 준 좋은 친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귀국 후 한국에서 아프리카인들이 고물상에서 TV, 냉장고 등의 고물을 사기 위해 고물상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이런 경험 때문이다.

나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귀한 보물을 다시 한국 또는 독일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팔아 마련한 생활비가 나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들이었는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소중한 고물에 대한 기억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지탱하는 귀한 경험의 선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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