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경자년 서생원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쥐와 인간의 역사는 애증의 쌍곡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쥐처럼 상반된 이미지와 캐릭터를 지닌 동물도 드물다. 인류가 좀 더 원시적인 동물이었을 때는 쥐와의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별 위험 부담 없이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그런데 인류가 한데 머물며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쥐는 도적으로 변했다.

인간과 유사한 잡식성으로 인간의 생활권을 맴돌며 주로 양곡과 음식물을 훔쳐 먹고 살아온 것이다. 땅밑 음습한 곳을 본거지로 살아가는 야행성 동물이어서 각종 질병의 매개체가 되었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간 페스트 역시 쥐가 주범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유해조수인 쥐를 박멸하기 위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쥐가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생명공학의 시대를 선도하는 실험용 흰쥐는 질병 연구와 신약개발에 긴요한 동물이다. 더구나 아프리카산 쥐는 지뢰 제거에 각별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인명 구조 훈련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키마우스'나 '톰과 제리'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20세기 최고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생원(鼠生員)이란 명칭으로 품격있는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극단의 이미지와 오지랖 넓은 속성 때문에 한국인의 생활 속에는 쥐와 관련된 속담이 숱하다. '독 안에 든 쥐' '쥐뿔도 모른다' '쥐 잡듯하다' '쥐 죽은 듯'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서생원의 지상천국은 인도에 있다. 까르니마따라는 힌두교 사원은 쥐를 신(神)의 사자로 추앙하며 신성시한다. 평생 먹을 것을 주며 상전으로 받든다고 하니, 그곳에 태어난 쥐들은 또 무슨 인연의 결과일까.

인간 사회에서 쥐는 여전히 애증이 교차하는 동물이다. '쥐새끼'라는 천대에서 '서생원'과 '십이지신'(十二支神)의 첫 번째 대우에 이르기까지 쥐는 '도적, 탐욕, 간신'의 이미지에서 '지혜, 예지, 신성'의 상징이라는 극단을 오간다. 명실공히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쥐의 단점보다는 서생원의 장점과 이미지가 부각되며 국정 혼란과 국운 쇠진을 다스리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증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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